개인주의 강한데 함께하는 시간 늘자 충돌…공간 재배치, 임시 피난소 서비스 등 거리두기 방식 주목
코로나19는 우리 삶을 확 바꿔놓았다. 재택근무가 확대되었고, 외식이 줄어들었으며, 주말에도 외출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었다. 이른바 ‘집콕(집에만 있음)’ 생활이 하나의 트렌드가 된 것이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일본에서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이혼 위기에 빠진 부부들이 늘고 있다. 도쿄에 설치된 ‘사회적 거리두기’ 표지판. 사진=AP/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일본에서는 ‘코로나 이혼’이라는 단어가 화제로 떠올랐다. 말 그대로 코로나가 원인이 된 이혼이다. 일본 매체 ‘닛칸겐다이’에 의하면 “부부가 좁은 집에서 24시간 붙어있다 보니 갈등이 불거지고, 이혼 사태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실제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인 지난해에 비해 가정폭력 사건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얼마 전, 도쿄 에도가와구에서는 아내를 때려 상해를 가한 혐의로 남편 A 씨(59)가 체포됐다. “코로나로 수입이 줄어들었다”며 아내가 푸념한 것이 다툼의 계기였다. A 씨는 “경제력이 없다고 비난하는 것처럼 들려 화가 났고 언쟁을 하던 중 아내의 얼굴을 손으로 내리쳤다”고 밝혔다. 바닥에 쓰러진 아내는 머리를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사망했다.
비단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유엔(UN)은 “코로나 팬데믹(Pandemic·대유행) 이후 전 세계에서 가정폭력이 급증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일례로 프랑스에선 가정폭력이 3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평론가 다치바나 아키라는 “일본인의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코로나 이혼을 증가시키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널드 잉글하트가 5년 주기로 실시하는 ‘세계가치관조사’라는 것이 있다. 여기서 ‘인생의 목표’에 관해 묻자 한국과 중국, 심지어 미국의 젊은이들조차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한다” “부모가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노력하고 싶다”는 응답이 일정 부분 나왔다.
반면, 일본 젊은이들은 “타인의 뜻에 따르기보다 나다워지고 싶다” “자신의 인생 목표는 스스로 결정한다”가 압도적이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일본인들은 ‘혼자’를 고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대학에 들어가 룸셰어를 하는 서양과 달리 일본은 원룸이 활성화됐고, 소량 구매가 가능한 편의점과 슈퍼마켓 등 인프라도 충실해, 비교적 ‘혼자 문화’가 발달한 편이다.
다치바나 평론가는 “결혼해서도 일본인의 개인주의는 이어진다”고 전했다. 남편은 회사, 아내는 엄마들 모임 같은 공동체에 속한 채 서로를 간섭하려고 하지 않는다. 요컨대 독립된 두 가구가 동거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장시간 함께 집에만 있다 보면 혼자만의 시간이 없어지기 때문에 ‘심리적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다치바나는 “일본에서 코로나 이혼이 늘어나는 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닛칸겐다이’에 따르면 “최근 코로나 이혼을 막기 위해 주택 내 ‘나만의 공간’을 재배치하거나 리모델링하는 일본인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가정은 아예 큰 집으로 이사해 개별공간을 마련한다.
더 나아가, 부부관계가 꼬여버린 이들을 위해 ‘임시 피난소’를 제공하는 사업체까지 등장했다. 호텔·민박을 운영하는 업체 ‘가소쿠’는 부부 사이가 나빠져 밖에서 지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방이나 집을 빌려주고 있다. 가구와 가전, 원격근무 환경이 완비된 집이다. 현재는 도쿄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전개하고 있지만 향후 삿포로와 오사카, 교토, 후쿠오카 등 지방에도 대응할 예정이다.
코로나 이혼 방지를 위해 가소쿠가 임시 피난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진=가소쿠 홈페이지
관련 서비스를 시작한 배경은 지난 4월 ‘코로나 이혼’이라는 단어가 SNS에서 화제가 되면서부터다. 코로나 여파로 회사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터라 ‘이를 활용해 돌파구를 마련하자’는 궁리 끝에 나오게 됐다. 가격은 1박에 4만~22만 원, 월 70만~720만 원 선이다.
아라이 게이스케 가소쿠 대표는 “서비스를 시작한 지 3일 만에 30건 이상의 문의가 이어졌다”고 밝혔다. 그중 과반수가 “한 달 정도 아내와 거리를 두고 싶다”는 남편들이었다고 한다. 지역은 집과 직장 양쪽을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신주쿠나 이케부쿠로, 아키하바라 같은 도심을 선호했다.
이런 사례도 있다. 한 40대 남성은 도쿄의 작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회사원이다. 아내와 중고생의 아들, 딸과 함께 살고 있는데, 코로나의 영향으로 가족 모두 칩거 중이다. 방이 작다 보니 결국 거실에 나오는 일이 잦아졌고, 그만큼 아내의 스트레스도 쌓여만 갔다. 얼마 전부터는 부득이하게 출근하게 됐는데, “코로나의 위험도 있으니 우선은 일시적으로 따로 사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아내로부터 들었다. 이처럼 최근에는 아내가 먼저 가소쿠 측으로 문의해오는 케이스가 증가하고 있다.
평상시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도 스트레스가 쌓이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면 부부싸움으로 번지기 마련이다. 아라이 대표는 “그럴 경우 ‘임시 피난소’를 이용해 부부간의 거리를 알맞게 유지하는 것이 방법이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적당한 거리감’은 일본 매체들이 공통되게 조언하는 말이기도 하다. 후지뉴스네트워크(FNN)는 코로나 이혼을 피하는 대책으로 “부부라고 해서 무엇이든 꼭 함께해야 하는 건 아니다”며 “서로를 너무 간섭하지 말고, 식사시간 이외에는 각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쪽이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맞벌이 부부인 30대 여성 교코 씨는 적당한 거리감을 통해 부부관계를 회복시켰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털어놨다. “대화를 통해 1층에서는 내가 일하고, 남편은 2층 침실에서 일하기로 했다. 또 마음대로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룰도 만들었다. 각자의 시간과 장소를 확보함으로써 스트레스를 훨씬 덜게 됐다.”
[설문조사] 코로나19가 이혼에 미치는 영향 일본 변호사 상담 플랫폼 가케콤이 ‘코로나 이혼’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코로나 이혼’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 사람(실제로 이혼한 사람을 포함) 1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다. 결과에 따르면, 이혼을 생각한 시기는 ‘코로나 감염 확대 이후’가 전체 응답자의 47%였다. 이들이 이혼을 원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로는 “코로나로 인해 부정적인 사고가 강해졌다” “혼자만의 시간을 낼 수 없게 됐다” “좁은 집안에서 24시간 함께 있는 것에 지쳤다” 등의 답변이 눈에 띄었다. |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