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회사와 사회에 적응한 사람일수록 위험…인간관계 재점검하고 ‘No’하는 경험 쌓아야
“사업 실패, 이혼 등 인생의 큰 위기 없이 무던히 살아온 사람도 어느 날 갑자기 미드라이프 크라이시스에 빠질 수 있다.” 일본 스와추오병원의 가마다 미노루 명예원장은 이렇게 언급했다.
영화 ‘매트릭스’로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 키아누 리브스는 마흔 즈음 노숙자에 가까운 허름한 차림으로 파파라치에 찍혀 화제가 된 바 있다. 당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픔에 키아누 리브스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추측성 기사가 쏟아지기도 했다. 나중에 본인이 밝히길 “마흔 살은 멜트다운(녹아내리듯 붕괴)이 돼 버린 제2의 사춘기 같았다”고 한다. 미드라이프 크라이시스의 증상 중 하나다.
#미드라이프 크라이시스 원인이 뭘까
중년이 되면 아무래도 젊었을 때보다 체력이나 기억력, 용모 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인생에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는 때이기도 하다. 이처럼 중년의 위기는 ‘인생의 정점이 지났다’라는 당혹감, 혹은 하나의 역할을 끝낸 것에 대한 공허함이 원인이 돼 일어난다.
예를 들어 출세 코스에서 벗어난 40대. 자신의 한계를 실감하고 잘나가는 친구와 비교하며 질투와 부러운 감정이 뒤섞인다. 아직 남아 있는 삶이 40년 이상일 가능성이 높은데 ‘이제 내 인생은 끝났다’며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다. 친인척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50대에게도 위기가 닥친다. 늙음과 죽음을 생각하다 공허함을 느끼는가 하면, 남은 인생에 조바심이 들기도 한다.
중년의 위기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공자에게도 찾아온다. 마음의 건강은 ‘얼마나 성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만족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 가령 경쟁에서 이겨 좋은 학교, 좋은 회사에 들어가 출세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경우다. 개인 시간과 일상을 희생하며 살아왔지만, 인생 후반에 접어들었을 때 문득 삶의 방식에 의문이 생긴다. 동시에 ‘나답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져 ‘이렇게 계속 살아가도 괜찮은 걸까’하고 되묻게 된다.
심료내과의 스즈키 유스케는 “인생 전반에 열심히 회사와 사회에 적응한 사람일수록 미드라이프 크라이시스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요컨대, 내 틀대로 살지 않고 타인의 가치관에 맞춰 산 사람들이다. 그 결과 어느 날 갑자기 일과 가족을 내팽개치기도 한다.
증상은 가벼운 것부터 심각한 것까지 다양하다. 일만 하던 사람이 별안간 몸을 단련해 ‘철인 3종 경기’ 참가를 선언한다든지, 새로운 취미생활에 푹 빠지는 이들도 많다. 그동안 이루지 못했던 삶을 되찾으려는 심리다. 또한 남성이라면 가정의 굴레에서 벗어나 연애 상대를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개중에는 난데없이 전직을 하거나 창업, 이민 등 인생의 방향을 틀기도 한다. 가장 심각한 것은 알코올과 도박 같은 의존증에 빠지는 경우다. 우울증, 불안장애를 앓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도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성숙한 중년 vs 미성숙한 중년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인생을 유아기부터 노년기까지 8단계로 나눴다. 그리고 “인간은 각 단계마다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면서 발달해나간다”고 했다. 다만 월반은 불가능하다. 즉 청년기에 마쳐야 할 ‘정체성 확립’이 이뤄지지 않으면, 중년이 되어서도 그 고민을 끌어안고 살아가게 된다.
그에 의하면, 중년기의 과제는 ‘생산성 창출’에 있다. 여기서 생산성이란 지금까지 자신이 익혀온 경험과 지식을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는 일이다. 요컨대 성숙한 중년은 주변 사람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생산성을 창출하지만, 미성숙한 중년은 관심이 자신에게만 국한되고 결국 침체에 빠지게 된다. 후자의 인생은 공허하고 지루할 뿐이다.
스즈키 의사는 성실한 모범생 타입에게 찾아오는 ‘중년의 위기’ 탈출법은 “타인의 룰, 평가에 얽매이지 않고 나만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조언한다. 일단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서툰 사람은 인간관계부터 재점검하라”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현재 인간관계를 ‘유쾌’ 또는 ‘불쾌’의 관점에서 살핀다. 불쾌를 느낀다면 당신이 많이 참고 있는 관계이며, 불공평을 강요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심리적 불쾌만이 아니라 ‘잠들지 못한다’ ‘머리가 아프다’ ‘속이 울렁거린다’ 같은 신체증상도 포함시키도록 한다. 만일 ‘불쾌하다’라고 느낀 관계성에는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라. 이처럼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서 ‘NO’라고 거절하는 경험이 쌓이면 나다운 인생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
#‘중년의 위기’ 예방법 5가지
가마다 원장은 “누구에게나 중년의 위기가 찾아올 순 있지만,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인생은 내리막길부터 진정한 승부가 펼쳐진다. 부장이 힘들면 ‘레전드’라 불리는 과장이 되면 된다. 삶의 목적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남을 위해 힘써보자. 이렇듯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하나씩 재정의하면서 위기를 긍정적으로 맞이하라는 조언이다. 아래는 가마다 원장이 구체적으로 제안하는 미드라이프 크라이시스 예방법이다.
①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다=지역 활동이나 동호회 등을 통해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면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②세대 간의 교류=부모 세대, 젊은 세대와 교류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누군가를 위해 노력함으로써 독선적이고 완고한 성향이 낮아진다.
③취미생활을 즐긴다=몰두할 수 있는 취미생활은 뇌를 젊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가령 드럼 같은 악기 연주를 추천한다.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자체가 설렘이며 기분 좋은 체험이다.
④자신의 변화를 되돌아본다=청춘 시절 좋아했던 소설, 영화 등을 다시 보는 것도 좋다. 그 시절과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자신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⑤체력을 키운다=중년기의 근육 단련은 노년을 건강하게 사는 준비이자, 지금을 활기차게 보내는 비결이기도 하다. 근육을 키우면 도전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창한 운동이 아니어도 괜찮다. 스쿼트나 팔굽혀펴기 등의 운동을 시작해보자.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마음의 침체, 부진을 해소해준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