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벌써 두 번째 감독 사퇴…양준혁 “구단은 아무 잘못 없나” 쓴소리
뼛속부터 ‘삼성맨’인 허 전 감독이 32년간 삼성과의 동행에 마침표를 찍고 떠나게 된 사연과 그와 동고동락한 최태원 2군 감독대행의 설명, 그리고 삼성 레전드로 꼽히는 양준혁 해설위원, 이만수 전 감독과 인터뷰를 통해 삼성의 문제점을 짚어본다.
#삼성의 아픈 숫자, ‘99688’
삼성 라이온즈는 2010년 준우승 이후 2011~2014시즌 우승, 2015시즌 준우승을 이루며 ‘삼성 왕조’를 구축했다. 그러다 2016~2020년 기록했던 팀 순위는 ‘99688’이다. 2017년 김한수 감독 부임 후 3년 동안 삼성은 9위(2017), 6위(2018), 8위(2019)의 성적을 올렸다. 결국 2019시즌 종료 후 삼성은 당시 전력분석 팀장이었던 허삼영을 감독으로 선임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허 전 감독은 1991년 투수로 삼성에 입단했다가 허리 부상으로 2년간 4경기 출전해 2와 3분의 1이닝을 소화한 게 전부였다. 1995시즌 마치고 은퇴 후 1996~2019년 훈련 지원과 전력분석 업무를 담당하며 프런트로 일했다. 이런 이력의 그가 2020시즌부터 팀의 지휘봉을 잡자 이런저런 말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2020시즌 삼성은 8위로 시즌을 마쳤고, 2021시즌에는 팀을 6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시키며 허 전 감독의 지도력은 인정받았다. kt wiz와 공동 1위(76승9무59패)로 정규시즌을 마친 뒤 타이브레이크에서 패하며 최종 순위는 3위로 마무리했지만 삼성의 아픈 숫자인 ‘99688’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고, 2022시즌을 기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허 전 감독은 삼성 팬들의 높은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올 시즌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이 발목을 잡았다. 불안하게 중위권을 유지하던 팀 성적이 7월 들어 구단 역대 최다인 13연패에 빠지며 9위로 떨어졌고, 결국 허 전 감독은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한 채 자진 사퇴로 삼성과의 32년 동행을 마무리했다.
#최태원 2군 감독대행이 본 허삼영
2군 감독이었던 박진만이 1군 감독대행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1군 수석코치를 맡았던 최태원이 2군 감독대행을 맡았다. 최태원 감독대행은 허삼영 전 감독과 3년간 동고동락하며 허 전 감독의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최 감독대행은 ‘일요신문’과 전화 인터뷰에서 허 전 감독의 사퇴 소식을 8월 1일 두산 원정 경기를 위해 버스로 이동하던 중 허 전 감독의 전화를 받고 알게 됐다고 말한다.
“7월 31일 일요일 롯데전을 마치고 나서 유독 감독님의 표정이 어둡다는 걸 느꼈다. 이전에도 힘들어 하시는 걸 느꼈지만 그날따라 더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일요일 홈에서 경기를 마치면 항상 감독님과 퇴근길에 동행했는데 그날은 감독님이 혼자 퇴근하셨다. 그리고 8월 1일 선수단 버스를 타고 서울에 거의 도착할 즈음에 감독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당연히 감독님이 서울에 먼저 도착하신 줄 알고 “감독님, 어디십니까?”라고 여쭤봤는데 감독님이 대뜸 미안하다고, 3년 동안 많이 도와줘서 고마웠다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버스 안이라 크게 말은 못하고 “감독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했더니 “미안합니다.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라고 말씀하시곤 전화를 끊었다. 이후 구단에서 감독님이 자진 사퇴했다고 발표했다.”
최 감독대행은 만감이 교차했다고 말한다.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이 허 전 감독을 잘 보필하지 못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는 한탄이 뒤따랐다.
“감독님은 정말 뼛속까지 ‘삼성맨’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삼성이라는 팀을 진심으로 아끼셨다. 평소에 우리 팀이 좋은 팀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그러려면 코칭스태프가, 선수들이, 그리고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다. 나도 여러 팀을 돌며 코치를 했지만 감독님처럼 코치들한테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코치들을 존중해주는 감독님은 처음이다. 가끔은 원정 경기 마치고 감독님과 소주 한 잔 나누고 그랬는데 어느 날부턴 감독님 혼자 시간을 보내셨다. 그조차 코치한테 부담을 준다고 생각하신 분이다.”
최 감독대행은 삼성이 올 시즌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시즌 개막 전 주축 선수들의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가 선수단 전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 부분이 컸다고 말한다.
“주축 선수들이 코로나19에 확진됐고, 그들이 복귀하는 과정에서 몸 상태를 온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물론 선수들과 트레이닝 파트에서 소통하며 몸 상태를 체크했지만 코로나19 후유증이 이후에도 오래 지속되는 걸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남은 선수들이 잘 버텨주면서 성적을 이끌었는데 확실히 잡을 수 있는 경기를 서너 게임 정도 놓치면서 팀이 흔들렸다. 일부에선 오승환이 마무리 투수로 제 역할을 못했다고 비난하지만 승환이의 몸 상태를 잘 알고 있는 코치들은 오승환한테 가장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크다. 발목이 안 좋아도 괜찮다면서 등판을 자처했고, 힘든 내색도 하지 않은 채 팀을 위해 참고 견디면서 버텨줬기 때문이다.”
#선수와의 신뢰가 중요했던 감독
최태원 2군 감독대행은 허삼영 전 감독이 지난 6월 ‘43타수 무안타’로 구단 기록을 세우며 최악의 부진을 보였던 김헌곤을 2군으로 내려 보내지 않고 1군 등록을 유지시킨 이유에 대해 “김헌곤이 주장이라는 상징성도 있었고, 선수와의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허 감독님 입장에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의 선수 구성을 부담스러워 하셨다. 그래서 부진한 선수들을 최대한 안고 가려 한 부분도 있었다. 삼성이 성적을 내려면 궁극적으론 그들의 활약이 중요하기 때문에 성적이 안 좋다고 당장 2군으로 내려 보내기보단 1군에서 시간을 주고 자신의 컨디션을 되찾길 바랐다.”
5년 최대 120억 원으로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 대접을 받은 구자욱의 부진도 뼈아팠다. 최 감독대행은 구자욱이 비시즌 동안 타격 메커니즘에 변화를 줬는데 그 변화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자욱이는 타격에 대한 철학이 확고한 선수다. 그런 선수에게 코치라고 해서 어떤 조언을 건네는 게 조심스럽다. 선수도 많이 고민하고 영상 찾아보면서 부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데 자꾸 개입하려 들면 선수가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나 구자욱이 갖는 상징성을 생각한다면 결과로 가치를 입증해야만 한다.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삼성 레전드가 본 삼성의 문제
삼성 영구결번의 주인공인 양준혁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최근 허삼영 전 감독의 자진 사퇴 소식을 듣고 굉장히 마음이 아팠다고 말한다.
“내가 선수 생활할 때도 10연패를 한 적이 있었다. 허삼영 감독이 책임을 지고 팀을 나갔지만 결국 팀은 고참 선수들이 이끌어야 하고, 고참 선수들도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한다. 고참 선수들은 개인 성적보다 팀을 먼저 앞세워야 한다. 감독이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위치라면 선수단 내부에서 선수들을 이끄는 이가 베테랑 선수들이다. 그런데 지금 삼성을 보면 구심점 역할을 하는 선수가 안 보인다. 그렇다고 외국인 선수인 피렐라가 그 역할을 할 순 없지 않겠나. 어느 순간부터 삼성 야구가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인 것처럼 보였다. 패하더라도 파이팅이 넘쳐야 하고, 선수들 눈빛에서 하고자 하는 의욕과 절실함이, 공 하나하나에 혼신의 힘을 쏟고, 땅볼을 치고도 1루로 전력 질주하는 모습이 보여야 한다. 쉽게 말해서 지금 피렐라 같은 선수가 서너 명 정도는 더 있어야 한다. 필드에서 독기를 품고 파이팅 넘치는 열정의 선수들 말이다.”
양준혁 해설위원은 허 전 감독의 자진 사퇴 이후 구단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 감독만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나. 구단은 아무 잘못이 없는 건가. 왜 감독한테만 그 짐을 다 떠넘기는지 모르겠다. 구자욱의 부진에 대해 말들이 많은데 그건 선수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돈을 많이 받고 뛰는 선수는 그만큼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다른 팀의 양의지, 김현수를 보면 자신만 챙기지 않고 팀 전체를 보고 끌어간다. 구자욱도 그런 모습을 보여야 한다.”
양준혁야구재단을 운영하며 유소년 야구 꿈나무 후원과 유소년 야구단 운영, ‘희망더하기 자선야구’ 등 야구와 관련된 일들을 꾸준히 벌이고 있는 양준혁 해설위원에게 프로팀 지도자에 대해 관심이 있느냐고 묻자 “5, 6개 팀의 유소년 야구단을 운영하는 것도 벅차다”면서 삼성의 차기 감독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삼성의 또 다른 레전드인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은 최근 KBO리그 40주년 레전드 시상식 참석을 위해 지난 7월 30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를 찾았다가 시구를 위해 마운드에도 올랐다. 이 전 감독은 자신이 대구를 방문하고 돌아온 이후 허삼영 전 감독의 사퇴 소식을 듣게 됐다며 침울해 했다.
“나는 이미 현장을 떠난 지 오래 됐기 때문에 왈가왈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지만 감독 시절 성적이 안 좋을 때 옆에서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이 정말 부담스러웠다. 그럴 때는 그냥 조용히 놔두면 알아서 올라오기 마련이다. 박진만이 어려운 시기에 감독대행을 맡게 됐는데 나도 SK 시절 감독대행을 해본 사람이다. 감독보다 더 어려운 자리가 감독대행이다. 삼성을 잘 알고 있는 지도자가 팀을 이끌게 됐으니 박진만 감독대행이 잘 이겨내길 바랄 뿐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