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성남시장 5명 중 4명, 용인시장 7명 중 5명 구속…대부분 부동산 토착비리 연루 “인·허가 권한 손질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장동·백현동 개발사업 관련 의혹, 쌍방울 불법 대북송금 의혹 등에 휩싸이며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두 차례 검찰에 출석한 이 대표는 검찰로부터 다시 소환 요구를 받았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이 이 대표를 수사하는 것을 야당 탄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대표는 검찰 수사가 대선 패배에 따른 정치 보복 성격이라는 메시지를 부각했다. 1월 30일 이 대표는 예정에 없던 기자 간담회를 통해 “모욕적이고 부당하지만 패자로서 오라고 하니 또 가겠다”고 했다. 이어 그는 “참으로 억지스럽고 검찰권을 이용해 진실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기소를 목적으로 조작하고 있다”면서 “옳지 않은 일이지만 내가 부족해 대선에서 패했기 때문에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 생각하고 소환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에 대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직접 나서 정면 반박에 나섰다. 1월 31일 한 장관은 법무부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취재진과 만나 “(이 대표가) ‘다 대선에서 졌기 때문’이라고 말씀하는 것 같은데 표를 더 받는다고 죄가 없어지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장관은 “이 사건은 민주당 정권에서,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주로 불거진 의혹 관련 수사”라면서 “민주당과 관계없는 이 대표 개인 성남시장 시절 지역 토착비리 수사”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가 띄운 ‘정치 보복론’을 한 장관이 ‘지역 토착비리론’으로 맞받아친 모양새가 됐다.
한 장관이 언급한 지역 토착비리는 전통적으로 지자체와 이권 사업 사이 연결고리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치권 복수 관계자는 지역 토착비리가 본격적으로 속출하기 시작한 시작점을 1995년이라고 짚었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민선으로 선출되기 시작한 때다.
경기도에서 활동하는 지역 정치인은 “민선 이후 지역구 내 개발 관련 인·허가 권한을 가진 기초단체장들 파워가 막강해졌다 특히 경기도를 비롯한 수도권 지역구 중 인구 팽창 속도가 남달랐던 성남이나 용인에 개발하기 좋은 노른자위 땅이 넘쳐났다”며 “인·허가 칼자루를 쥔 지자체와 그 입맛에 맞는 조건을 제시하는 민간기업이 손을 잡고 공정하지 못한 이득을 취하면 그게 바로 토착비리다. 그간 성남과 용인에서는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시장을 했던 인사들이 줄줄이 구속됐던 사례가 있다. 구속되지 않은 시장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라고 밝혔다.
성남과 용인에서 토착비리 빈도가 높았던 이유는 두 도시가 발전한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서울은 마용성, 경기는 수용성’이라는 말이 있다. 수도권에서 부동산 투자 가치가 높은 서울 마포·용산·성동, 경기 수원·용인·성남 지역을 일컫는 관용어로 자리 잡았다. 특히 경기 지역에서 주목받는 성남과 용인은 21세기 들어 인구가 급속도로 팽창한 지역이다.
20세기 말 ‘천당 밑에 분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동산 신드롬 중심에 있었던 성남은 21세기 들어서도 판교·위례·대장 신도시 등 초고속 개발을 꾸준히 이어왔다. 1985년 44만 7467명이던 성남시 인구는 2022년 기준 92만 2518명으로 늘어났다. 수치상으로 인구가 두 배 이상 늘었다.
용인시는 성남 후발주자로 초고속 개발에 열을 올린 지역이다. 용인 인구 팽창 속도는 성남보다 훨씬 빠르다. 1985년 15만 3767명이던 용인시 인구는 2022년 107만 4971명으로 불어났다. 이른바 ‘5공 시절’ 대비 인구수가 7배가량 늘어난 셈이다. 위상에도 차이가 있다. 1996년 용인은 용인군에서 용인시로 승격했다. 15대 국회까지 용인시에 지역구 국회의원은 1명이었다. 그러나 인구가 100만 명을 돌파하면서 용인시 선거구는 갑·을·병·정 4개로 쪼개졌다. 21대 국회 기준 국회의원 4명이 할당된 도시가 됐다.
상전벽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개발을 거듭해온 두 도시엔 공공연한 잔혹사가 있다. 바로 전직 시장들의 사법 리스크다. 성남시는 지방선거가 실시된 뒤로 시장이 총 6명 있었다. 초대 민선시장 오성수 전 시장(무소속)부터 김병량(새정치국민회의) 이대엽(한나라당) 이재명(민주당) 은수미(더불어민주당) 전 시장을 거쳐 신상진 성남시장(국민의힘)이 재임 중이다.
전직 성남시장 중에선 이재명 대표만이 구속을 당한 이력이 없다. 민선 실시 이후 구속된 성남시장 대부분 부동산 관련 개발 비리에 얽혀 철창신세를 져야 했다. 민선 1기 오성수 전 시장은 지하철 상가개발 사업자로부터 1억 6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김병량 전 시장은 주상복합 설계 용역을 친지에게 주도록 하는 제3자 뇌물 혐의, 건설업자로부터 1억 원을 받은 뇌물 수수 혐의로 두 차례 구속됐다.
민선 이후 첫 재선인 이대엽 전 성남시장은 관급 공사 수주 대가로 부동산업 관계자로부터 1억 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은수미 전 시장은 2022년 9월 16일 뇌물수수와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징역 2년 판결을 받고 법정구속됐다. 성남중원경찰서 소속 경찰로부터 수사 관련 기밀과 편의를 제공받는 대가로 특정 업체가 성남시 터널 가로등 교체사업을 수주해 납품할 수 있도록 해줬다는 혐의를 받았다.
전직 용인시장은 7명이다. 민선 1기 윤병희 전 시장(민주자유당)은 용인군수에서 용인시장으로 직함이 바뀌었다. 이후 예강환(새정치국민회의) 이정문(한나라당) 서정석(한나라당) 김학규(민주당) 정찬민(새누리당) 백군기(더불어민주당) 전 시장을 거쳐 이상일 시장(국민의힘)이 현직으로 재임 중이다.
용인시장은 민선 1·2기에서 재선했던 윤병희 전 시장을 제외하면, 재선에 성공한 인물이 없다. ‘시장 쟁탈전’이 치열했던 지역이다. 전직 시장 7명 중 5명이 구속된 이력이 있다. 윤병희 전 시장은 임기 중 아파트 공사 등 개발사업 편의 대가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보궐선거로 용인시장 바통을 이어받은 예강환 전 시장 또한 아파트 단지 인·허가 관련 비리로 구속됐다.
이정문 전 시장은 ‘세금 먹는 하마’라는 별명을 가진 용인 경전철 사업 관련 비위 혐의로 구속됐다. 서정석 전 시장은 구속은 피했지만 인사 비리(직권남용 및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김학규 전 시장은 하수관 정비 관련 업자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구속됐다.
정찬민 전 시장은 제21대 총선 경기 용인갑 지역구에서 당선된 뒤 여의도에 입성했다. 하지만 시장 재직 시절 인·허가 개입 의혹으로 재판에 회부됐고, 2022년 9월 22일 제3자 뇌물 수수혐의로 징역 7년, 벌금 5억 원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백군기 전 시장은 구속된 이력은 없지만, 임기 중 아슬아슬한 순간에 직면한 바 있다. 백 전 시장은 사전선거운동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아 재판을 받았다. 2019년 12월 12일 백 전 시장은 벌금 90만 원 형 선고를 확정 받으며 시장 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성남 지역에서 활동하는 정치권 관계자는 “성남시장과 용인시장들의 잔혹사를 돌아보면 그야말로 오징어 게임 수준”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 관계자는 “감옥에 가지 않은 시장을 찾는 것이 더 어렵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두 지역 공통점은 시장의 당적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여기다 강남 인근 부동산 개발 수요가 높은 지정학적 위치를 지니고 있다. 이런 공통점 때문에 그 어느 지역보다 전직 기초단체장들이 고전을 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런 지역구에서 환경적 특성을 돌파하고 대권주자로 부상했다. 대장동·백현동 개발사업 관련 비리가 전국적인 관심을 받게 된 이면엔 이 대표의 정치적 체급이 불어난 이유도 있다.”
그는 “이 대표의 유·무죄 여부를 떠나 이제는 지방자치제 인·허가 시스템을 손볼 때가 됐다”면서 “임기 중에 한탕 하고 빠지자는 관행이 이어지지 않으려면 기초단체장 인·허가 권한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시스템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