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앤리스백’ 전략 막힌 데다 SSM 분할 매각 쉽지 않아…영남권 점포 분할 매각설에 노조와 갈등도
MBK파트너스가 기업형 슈퍼마켓(SSM)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분할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가 지난해부터 나왔지만 아직 가시화된 것이 없다. 세일앤리스백(점포 매각 후 재임차) 전략을 펼치며 2015년 142개였던 점포수를 지난해 6월 말 기준 129개로 줄였고,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 중이지만 상업용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으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통시장 무게중심 축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져 시장 여건은 악화일로다. 그동안 차입금 상환에 주력하며 본업 투자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탓에 경영 실적 악화가 굳어졌다는 진단이 나온다.
MBK파트너스는 2015년 10월 7조 2000억 원을 들여 영국 대형마트 기업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를 인수했다. 당시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가장 큰 바이아웃(회사의 소유권 지분 또는 회사 자본금의 과반수 지분을 취득하는 투자 거래) 거래 금액을 기록했는데 당시부터 미래 투자금 회수가 썩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많은 사모펀드들이 투자 후 약 5년 내 기업 가치를 끌어올려 재매각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패턴을 보여주고 있지만 MBK 입장에서는 홈플러스 인수 후 10년이 되도록 엑시트(자금회수)를 못하고 있다.
그사이 홈플러스 영업이익은 매년 줄어들고 있다. MBK 인수 전인 2014년 8조 5681억 원(영업이익 약 3383억 원)이었던 연매출은 2023년 6조 9314억 원으로 19.1% 줄었다. 영업손실은 2021년 1335억 원, 2022년 2601억 원, 2023년 1994억 원 등 매년 2000억 원 안팎을 기록 중이다.
MBK는 지난해 홈플러스 내에서 비교적 알짜로 평가받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분할 매각하기 위해 국내외 유통업체, 이커머스 업체 등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원매자로 거론돼온 쿠팡이나 알리 익스프레스 등은 인수를 추진한 바가 없다며 선을 그었다.
올해 들어서는 MBK가 영남권 점포를 중심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하는 것을 두고 권역별로 점포를 분할 매각하려는 계획이 깔려 있다는 의혹이 홈플러스 노동조합에서 불거졌다. 최철한 마트산업노조 홈플러스지부 사무국장은 “MBK는 딜라이브(종합유선방송사업자)를 매각할 때 지역별로 쪼개기를 했던 적이 있다”며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 추진이 잘 안 되고 있는 점과 최근 유통업계 상황 등을 고려해 홈플러스 통매각이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MBK는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처분을 하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유통업계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매각이 쉽지 않을 것이란 부정적 전망이 우세하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도 역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통매각이 현실 가능성이 가장 낮지만 점포수를 줄여나가는 것도 대형마트 입장에서는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없게 돼 리스크가 있다”며 “그렇게 되면 매수자를 찾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업계 다른 관계자는 “국내에서 유사한 업태를 영위하는 기업 중에는 상권도 겹치고 온라인 점유율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에서 홈플러스를 인수할 이유가 없다”며 “그나마 홈플러스가 지속적으로 해왔던 개별 매장 폐점을 통한 자본 유동화도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나 가능한 얘기지, 이젠 그마저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매각 후 재임대 방식으로 자산유동화를 지속해온 홈플러스는 2020년대 들어서 폐점 후 부지 매각, 부동산 개발 후 재임대 방식으로 슬림화 전략을 펼쳐왔는데 최근 부동산 시장 침체로 그마저 지연되고 있다. 때문에 폐점 상태에 머물러 있는 매장이 여러 곳이다. 대전둔산점, 경기 안산점, 부산 가야점이 그 예다. 부산 반여점, 서울 신내점도 같은 방식을 염두에 둔 폐점이 예정돼 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대부분 노후화한 시설을 개선하기 위한 것으로 건물 재개발 완료 후에 최신 시설로 다시 오픈할 예정”이라면서 “폐업 매장, 임대 매장 정보는 원활한 영업을 위해 제공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홈플러스는 폐점 등을 이유로 인력 구조조정이 이어지며 노사 갈등도 고조되고 있어 상황이 더욱 안 좋다. 노조에 따르면 최근 홈플러스는 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 지난 1월 12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고 370명 정도가 희망퇴직을 신청해 이달 7일 회사를 떠난다. 노조는 “해당 지역 전체 직원 3100명의 10%가 넘는 규모로,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이후 신규 인력을 충원하지 않고 있다”며 “노동 강도가 극단적으로 높아져 퇴직을 선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2015년 12월 홈플러스 3사(홈플러스, 홈플러스 스토어즈, 홈플러스 홀딩스)의 국민연금 가입자 수는 2만 5358명, 홈플러스(주)로 통합된 현재는 1만 9280명으로 약 25% 줄었다”고 덧붙였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익스프레스 사업부문 매각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으나 M&A 특성상 정확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며 “노조의 영남권 점포 분할 매각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아무런 근거도 없다”고 일축했다. 희망퇴직과 인력감축에 대해서는 “최근 5년간 홈플러스는 대형마트 3사 중 가장 낮은 인력 감소율을 보이고 있다”며 “2019년 약 1만 2000명의 계약직 비정규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대형마트 3사 중 정규직 비중이 가장 높다”고 설명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대형마트 산업이 위축된 데다 사모펀드들이 사업 자체에 대한 진정성이 대체로 부족하다보니 이런 운명에 처해진 것”이라는 근본적 진단을 내놨다. 서 교수는 “현재의 비즈니스 구조로는 국내외 어디서도 원매자를 찾기 어렵고, 리테일 테크 비즈니스(소매 유통 사업에 빅 데이터‧인공지능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접목) 방향으로 전환하거나 여러 제휴 마케팅 등을 통해 사업 매력도를 끌어올리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