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총괄’ 불구 계엄 후폭풍 비켜가 형평성 논란…국방부 “입건됐다고 무조건 인사조치 안해”
국방정보본부장은 국방 정보파트를 총괄하는 보직이다. 중장 계급 보직으로 정보계통 군인이 올라갈 수 있는 정점으로 꼽힌다. 합참 정보본부장을 겸직하는 자리기도 하다. 현직 국방정보본부장은 육사 47기 원천희 중장이다.
원천희 국방정보본부장은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한 각종 미스터리 중심에 서 있다. 2024년 4월 취임한 원 본부장은 블랙요원 신상유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 갈등부터 비상계엄 때 정보사가 선관위 장악에 동원된 사건까지 이르는 타임라인에서 정보 파트 총괄 지휘자로 활동한 인사다. 그 과정서 정보사 인사조치에도 직접 관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비상계엄 전후 국방정보본부 예하 정보사엔 직무배제 폭풍이 불었다. 비상계엄 이전엔 박민우 전 정보사 여단장이 정보사 수뇌부 갈등 여파로 직무배제된 바 있다. 계엄과 무관한 박 전 여단장은 계엄 직전 야전부대로 전출됐다. 박 전 여단장은 원 본부장과 육사 47기 동기생이다.
비상계엄 이후엔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과 정성욱 대령, 김봉규 대령 등이 줄줄이 직무배제됐다. 이른바 ‘햄버거 회동’ 참여자들로, 정보사 비상계엄 키맨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다.
직무배제 소용돌이엔 타부대 인사들까지 휘말렸다. ‘수사 2단’을 모의하려 판교 소재 정보사 예하부대에 모였던 방정환 준장, 구삼회 준장 등이 모두 직무배제된 상태로 진상조사 대상으로 분류됐다. ‘비상계엄’ 관련 이슈에 스치기만 해도 직무배제가 되는 형국이다.
그런데 정보사 지휘책임이 있는 원천희 국방정보본부장은 ‘직무배제 폭풍’ 속에서 살아남았다. ‘지정 생존자’ 원 본부장이 계엄 후폭풍을 빗겨간 것과 관련해 군 내부적으로도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선 형평성 논란까지 고개를 들었다.
한 전직 정보사 관계자는 “직속 지휘관인 국방정보본부장이 계엄 준비와 관련한 정보사 내부 이상징후를 모를 리 없다”면서 “비상계엄 사태가 내란 혐의로 비화하고 있는데, 1차적 지휘책임을 져야 하는 원천희 본부장은 여전히 직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정보사는 여름부터 각종 메가톤급 이슈로 골머리를 앓아왔다”면서 “그 과정에서 대대적인 조직개편이 이뤄졌고,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로는 앞선 정보사 내부 각종 인사조치가 계엄을 위한 포석이 아니었는지 하는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계엄 정국에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민간인 신분 ‘비선’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정보사를 사실상 장악했을 때 국방정보본부가 이를 방관했는지 협조했는지를 명확하게 파악해야 할 때”라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방관을 했든 협조를 했든 모두 문제가 되는 상황이다. 책임론 중심에 서 있는 원 본부장이 내란 모의 관련 피의자 신분이 됐음에도 직무는 정상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비상계엄에 정보사가 동원되는 데 있어 국방부와 정보사 사이 브리지 격인 국방정보본부장에 대한 직무배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내란 혐의 중심인물이 여전히 실권을 쥐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국회 내란특위 소속 한 야당 의원실 관계자는 “이번 계엄 사태를 보면 중간이 비어 있는 느낌”이라면서 “국방정보본부장을 패싱하고 국방부 수뇌부와 정보사가 계엄을 논의했어도 문제 소지가 있고, 국방정보본부장이 국방부와 정보사를 잇는 라인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어도 문제 소지가 있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 주요 보직에 대한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면서 “계엄에 가담한 주요 라인이 군 내부 실권을 쥔 상태로 진상조사 및 수사를 받는 것에 대한 부분을 짚고 넘어갈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그는 “계엄수사 및 진상조사 과정에서 대중적 관심을 끌 만한 스토리를 가진 주요 핵심 인물이 부각되는 가운데, 원 본부장에 대한 책임론이 교묘하게 희석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내란특위와 정치권 안팎에선 성범죄에 연루돼 불명예 전역한 뒤 계엄 ‘비선’으로 돌아온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정보사 수뇌부 갈등 논란에 휩싸이며 뜨거운 감자가 됐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캐릭터가 뚜렷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비해 원천희 국방정보본부장에 대한 대내외적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평가다.
전·현직 정보사 복수 관계자들에 따르면, 비상계엄 사태 이전부터 원 본부장은 오락가락 행보를 이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 재임 시절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재임 시절 ‘장관 기호’에 따른 맞춤형 인사가 이뤄진 경우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런 인사는 비상계엄 진상조사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현직 군 내부 관계자는 “원 본부장은 전형적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데 집중하며 상부 입맛에 맞는 조치만 취해왔다”면서 “신 전 장관 재임 시 본인이 했던 인사를 김 전 장관 취임 이후 무른 케이스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이 중 특정 사례는 비상계엄에 정보사가 동원되는 나비효과 진원지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했다.
원 본부장은 비상계엄 선포 전날인 2024년 12월 2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만나 계엄을 논의했다는 의혹 중심에 선 인물이다. 국방부 측은 원 본부장과 김 전 장관이 문 전 사령관을 만난 것은 사실이나 계엄 논의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정보사 예산이 많아 장관에게 직접 관련 내용을 보고하는 자리에 원 본부장이 배석했다는 취지다.
지난 2월 3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 관계자는 “원 본부장을 내란 관련 혐의로 입건해 1월 23일 한 차례 소환조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피의자는 총 53명으로 이 중 군인은 20명이다. 원 본부장도 피의자 중 한 명이다.
내란 혐의 피의자로 입건됐지만, 원 본부장은 여전히 직무를 정상적으로 수행 중이다.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도 원 본부장에 대해선 별 다른 인사조치를 내린 바 없다. 또 다른 군 내부 관계자는 “내란 혐의 입건은 블랙요원 신상유출 사건이나 군 내부 각종 사건사고와는 차원이 다른 이슈”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계급이 낮으면 사건과 연루만 돼도 직무배제를 피할 수 없는데, 초유의 사건에서 내란 혐의를 받는 초고위층이 직을 유지하는 현 상황과 관련해 군 내부적으로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초고위층에게만 무죄추정 원칙이 적용되는 것인가.”
그는 “원 본부장이 내란 혐의로 입건된 이상 진상조사 및 수사에 협조를 해야 한다”면서 “정상적인 직무 수행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일요신문은 국방부에 원천희 국방정보본부장이 내란 혐의 피의자로 입건됐음에도,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배경에 대해 질의했다. 국방부 측은 “입건이 됐다고 무조건 직무배제를 하진 않는다”면서 “혐의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서 인사조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입건이 됐다고 무조건 인사조치를 하게 돼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원천희 국방정보본부장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규정상 언론사 접촉은 공보계통을 통해 하게 돼 있다”면서 “수고스럽겠지만 공보실로 문의 바란다”고 답변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