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요원 신상유출 여파 책임 직무배제돼…계엄 직전 징계 없이 새 보직 받아 “외통수 몰린 셈”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사진=연합뉴스](https://storage2.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5/0212/1739332144188887.jpg)
일요신문 취재에 따르면, 정 대령은 계엄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외통수에 몰렸던 것으로 파악됐다. 정 대령은 2024년 7월말 블랙요원 신상유출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징계를 대기하는 처지가 됐다. 정보사 여단 산하 공작부대 부대장이었던 정 대령이 블랙요원 신상유출 지휘책임자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전직 정보사 관계자는 “정 대령이 블랙요원 신상유출 관련 지휘책임에 대한 징계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왔다”면서 “군무원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났으나, 당시 문상호 전 사령관 경질이 논의될 정도 사안이라 징계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복수 정보사 전·현직 관계자들의 전언,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공소장 등을 종합하면 정 대령은 직무배제된 뒤 안양 소재 정보사 본청에 마련된 사무실로 출퇴근했다.
직무배제는 군 내부 공식용어로 ‘분리 파견’이다. 분리 파견 시엔 당사자 인사조치가 마무리될 때까지 직무를 수행하지 않고 대기를 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정보사의 경우 고위 관계자가 직무배제되면 영외 사무실이나 직무와 무관한 곳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사진=박은숙 기자](https://storage2.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5/0212/1739332115740983.jpg)
직무배제 이후 정 대령은 문 전 사령관과 독대하는 횟수가 점차 늘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 전 사령관 공소장에 따르면, 문 전 사령관은 2024년 10월에만 11차례 자신의 집무실로 정 대령을 불러들였다. 7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정 대령은 문 전 사령관과 초근접한 장소에서 징계 대기했다.
전직 정보사 관계자는 “직무배제 이후 대기하는 장소가 사령관 집무실과 같은 층으로 배정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면서 “정보사 같은 특수한 기관에선 이례적인 일의 이면엔 특정한 의도가 있을 거라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취임한 뒤인 10월 말에서 11월 초 징계 없이 새로운 보직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블랙요원 신상유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 갈등을 거치면서 정보사는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신설된 것으로 추정되는 ‘0000단’ 단장으로 정 대령이 보임됐다.
블랙요원 신상유출 사건의 파도를 가까스로 피했던 정 대령은 더 큰 파도에 휩쓸리게 됐다. 바로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정 대령이 새로운 보직을 부여받은 시기는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지시하는 일이 있으면 잘 도와주라’는 지시를 받은 뒤다. 이 지시 이후 정성욱 대령과 김봉규 대령은 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 작전 수행 요원 선발 지시를 하달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햄버거 회동이 열린 경기도 안산 소재 롯데리아. 사진=연합뉴스](https://storage2.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5/0212/1739332159300927.jpg)
전직 정보사 요원 A 씨는 “비상계엄이 임박했을 무렵 신설 조직으로 발령 났기 때문에, 정 대령은 비교적 자유롭게 특정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정 대령은 징계 대기자 신분에서 대형 프로젝트 핵심 관계자가 됐다. 정 대령 입장에선 무조건 충성을 다할 수밖에 없는 외통수에 몰린 셈”이라고 했다.
A 씨는 “정 대령은 HID에서 군 생활을 시작했고 공작통 및 요원 관리에 능했다”면서 “성실한 근무 태도를 지닌 인물로 평가됐다”고 했다. A 씨는 “노 전 사령관을 비롯해 ‘계엄 기획자’들이 정 대령의 성실성 및 전문성을 계엄 준비에 활용하기 적합하다고 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정 대령은 정치적인 풍파에 휩쓸려 상명하복에 충실하다가 화를 입고 있는 케이스”라면서 “정 대령 입장에선 블랙요원 신상유출 사건 지휘책임 대상자로 분류된 이후 계엄 준비에 투입된 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 기회’는 돌이킬 수 없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정 대령은 계엄을 사전 모의한 핵심 관계자로 거론됐다. 2024년 12월 24일 경찰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은 정 대령을 문 전 사령관 내란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범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사건을 이첩했다. 수사 과정에서 정 대령은 혐의 일부를 인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천희 국방정보본부장. 사진=국회사진취재단](https://storage2.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5/0212/1739332196744236.jpg)
이 관계자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 재임 시기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재임 시기가 맞물리는 시점에 ‘장관 입맛’에 따라 원 본부장이 정 대령에 대한 오락가락 인사를 단행한 것이 결과적으론 정 대령 개인에겐 최악의 시나리오로 돌아온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 대령은 내란 혐의에 대해 수사받는 처지가 됐지만, 그 동기를 제공한 원 본부장은 여전히 직무를 수행 중”이라면서 “정 대령이 문 전 사령관과 같은 층에서 징계 대기를 할 수 있었던 상황도 원 본부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은 원 본부장을 내란 혐의 피의자로 입건한 상태다.
정 대령 인사조치 배경에 대해 원천희 국방정보본부장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규정상 언론사 접촉은 공보계통을 통해 하게 돼 있다”면서 “수고스럽겠지만 공보실로 문의 바란다”고 답변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