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항지에서 빠지면서 환적 물량 감소 우려…반면 북미 환적 증가·MSC 협력 강화 전망도

머스크와 하팍로이드가 손잡은 해운동맹 ‘제미나이 협력’이 공식 출범했다. 양사의 합계 시장 점유율이 21.7%에 달하는 제미나이 협력은 기존 해운동맹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등장한 신규 해운동맹으로 2월 1일부터 운영이 시작됐다. 제미나이 협력이 내세우는 핵심 서비스는 항로 최적화를 통한 정시성 확보다.
제미나이 협력은 우선 희망봉 경유 항로로 운항하다가 홍해가 정상화할 경우 다시 수에즈 운하로 진입할 방침이다. 유럽에서 출발한 선박은 로테르담항과 함부르크항을 거쳐 지중해·수에즈운하·인도양을 통과, 말레이시아 탄중팔레파스까지 3번만 기항하게 된다. 기존에는 양사의 선박이 아시아 각지를 경유하며 부산항까지 기항했지만 제미나이 협력의 계획대로라면 대형 모선이 직접 부산항에 오지 않고, 말레이시아에서 소형 자선(피더선)에 화물을 옮겨 실은 후 부산까지 이동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이와 관련해, 환적 물량 감소로 부산항의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항은 역대 최대 물동량인 2440만 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를 처리했다. 절반 이상이 환적 물량이다. 수출입 물동량은 1090만 5000TEU로 2023년 대비 2% 늘었으나 부산항에서 환적한 물량은 2023년 대비 9% 증가한 1349만 7000TEU로 집계됐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 회장은 “앞으로는 유럽 항로에서 머스크와 하팍로이드의 환적 물량이 빠진다. 화물을 내렸다가 보관하고 다시 싣는 환적 과정에서 부산항이 상당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데 이제는 일정 부분 해당 물량을 포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부산항은 세계 2위 환적항으로, 그동안 글로벌 물류의 허브항 역할을 해왔다. 환적항은 화물을 한곳에 모은 뒤 다시 목적지로 분배하는 거점 역할을 한다. 허브항에서는 화물을 두 번 처리하면서 물동량을 늘리고 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지만 피더항으로 바뀔 경우 경제적 이익은 감소한다.
부산항이 허브항이 아닌 피더항으로 전락하면 물류 비용 측면에서도 불리해질 우려가 있다. 피더선만 운영될 경우 운송 과정이 추가되면서 화주들의 물류비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부산항의 경쟁력이 약화될 뿐만 아니라, 수출입 비용 상승으로 인해 우리나라 기업들이 생산·판매하는 제품의 가격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준수 서강대 경영대 명예교수는 “제미나이 협력의 부산항 패싱은 과학적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한 결정이다. 앞으로 인구와 제조업 감소 등으로 동아시아의 물동량 창출 능력이 감소하고 물류의 축이 동남아 쪽으로 옮겨간다는 계산을 한 것”이라며 “부산항이 자체적인 화물 창출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지속적인 경쟁력 저하가 불가피하다. HMM을 비롯한 국적 선사들이 북미·유럽뿐만 아니라 동남아·남미·아프리카 등 다양한 항로를 개척하고 신규 화물을 창출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제미나이 협력의 ‘부산항 패싱’에 대한 우려가 지나치다는 분석도 나온다. 제미나이 협력이 운영하는 ‘전용 셔틀(피더선)’이 기항하는 곳이 중국을 제외하면 아시아 항만에서 국내의 부산항과 베트남의 하이퐁항·붕따우항, 태국의 람차방항 4곳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존 기항지였던 대만의 카이슝항과 홍콩항은 제외됐다.
피더선 운항으로 운송 속도가 단축되면 오히려 국내 화주들에게 유리해진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전 세계에서 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항로는 30개 남짓이다. 이 중 절반이 부산항을 거친다. 그런데 기존 방식은 부산 출발 후 중국(상하이·닝보·선전·광저우 등)에서 최소 2~5개 항만을 거친 뒤 말라카 해협을 통과해 유럽으로 향하는 구조였다. 중국 항만에서 적체가 발생할 경우 부산에서 출발한 국내 화주들의 화물도 함께 지연되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제미나이의 전용 피더선은 중국 항만을 거치지 않고 부산에서 바로 탄중 펠레파스로 직행하기 때문에 운송일자가 약 17일에서 열흘 정도 단축된다는 장점이 생긴다.
부산항만공사 관계자는 “환적 때문에 우리 화주들도 우려하긴 했지만 제미나이 협력이 우리나라 주요 대형 화주들한테 화물을 더 빨리 보낼 수 있다고 설명했고 이미 부킹도 다 완료됐다. 과거에는 더 빨리 보내는 옵션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환영을 받고 있다”라며 “제미나이 홈페이지에서 유럽까지 운송 시간을 확인해보면 부산에서 로테르담까지의 운송 시간이 상하이·닝보·칭다오 항에서 보내는 것보다 훨씬 짧다. 그런 점들이 잘 안 알려져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부산항에서 로테르담·함부르크항까지 화물이 이동하는 데 시일은 45~60일가량이다. 여기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홍해 사태, 수에즈 운하 사고 등으로 운송 지연이 빈번해지면서 물류 기업들의 불만이 커진 상황이다. 구교훈 회장은 “납기 지연은 판매 기회 상실로 이어진다. 크리스마스 시즌 용품이 연말 지나서 도착하거나 여름용 물놀이 기구가 가을 지나서 도착하면 재고만 쌓이지 팔리겠나”라며 “제미나이 정시성을 9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다른 글로벌 해운사의 평균 정시성이 50~60%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제미나이가 혁신적인 서비스를 들고 온 셈이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부산항만공사는 북미행 환적 물량은 오히려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제미나이 협력은 북미행에서는 부산항을 허브로 재편했기 때문이다. 부산항에서 환적되는 북미행 물동량의 비중은 33%로 유럽행 환적 물량인 3%에 비해 비중이 크다. 제미나이 협력은 현재 칭다오, 톈진, 대련 등 중국 북부 항만에서 출발하는 화물을 부산항으로 집화한 뒤 부산에서 북미로 연결하는 환적 시스템을 구축했다. 즉, 유럽행 환적 물량은 줄어들 수 있지만, 북미행 환적 물량은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산항과 글로벌 1위 선사인 스위스의 MSC와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MSC의 점유율은 20.3%로 약 639만 TEU의 선복량을 보유하고 있다. MSC는 지난해 단일 선사로는 최초로 부산항에서 연간 컨테이너 물동량 400만 TEU를 처리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 중 80%가량이 환적 물량으로, MSC는 북미로 출항하는 대형 모선의 소석률(화물적재율)을 높이기 위해 일본·동남아·중국에서 화물을 부산항으로 집결한 뒤 대형 모선에 태워 북미로 수출하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여기에 부산컨테이너터미널(BCT)에 따르면 부산항 신항 터미널이 MSC의 미주·유럽 항로 대형 노선을 추가로 유치하면서 올해 2월부터는 모두 5개 노선 서비스가 부산에 기항할 예정이다. BCT 측은 연간 100만 TEU의 물동량을 추가 처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북미 항로 전망에 대해서는 불확실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원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북미 항로 전망이 좋다고 단언하기에는 우려되는 지점이 많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서 관세 전쟁이 시작됐고 온쇼어링(자국에 생산 시설을 두는 현상)·리쇼어링(해외로 생산시설을 옮긴 기업들이 다시 자국으로 돌아오는 현상)이 활발해지며 해상 물동량이 감소하고 있다”라며 “특히 중국에서 북미로 가는 물량은 확실한 감소가 전망되고 있기 때문에 제미나이 협력의 기항지 감축과 트럼프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유럽향과 미국향 모두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상황이 나빠질 우려도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라고 제언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