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이나 개봉 연기했지만 재편집은 하지 않아…“계급 문제 스며들 수 있지만 거창한 투쟁 다루진 않아”
봉준호 감독의 새 영화는 복제인간을 다룬 SF 장르 ‘미키 17’이다. 2월 28일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로 개봉한 뒤 3월 7일 북미에서 공개한다. ‘미키 17’은 한국 자본은 투입되지 않은 할리우드 스튜디오 워너브라더스가 만든 미국 영화다. 봉 감독은 ‘기생충’으로 뜨거운 관심을 한 몸에 받을 당시 차기작으로 할리우드의 ‘미키 17’을 선택해 촬영을 시작했다. 영화 촬영은 물론 후반 작업 등 일정은 이미 2023년에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개봉까지 1년 이상이 걸렸고, 그동안 몇 차례 개봉 시기가 연기돼 묘한 궁금증이 형성되기도 했다.

#개봉 시기 두 차례 변경, 그 배경에 궁금증
‘미키 17’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인 미키의 이야기다. 일종의 복제인간인 미키는 인간을 대신해 어려운 노동을 하거나 인간은 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임무를 수행한다. 영화는 17번째 미키가 얼음이 뒤덮인 우주 행성을 개척하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죽을 위기에 처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17번째 미키가 죽은 줄 알고 18번째 미키를 만들어지면서 위험천만한 일들이 벌어진다. 주인공 미키는 할리우드 인기 배우 로버트 패틴슨이 맡았다. 이외에도 마크 러팔로, 토니 콜렛과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까지 화려한 출연진을 갖췄다. 영화는 소설 ‘미키 7’이 원작이다. ‘기생충’의 전 세계적인 성공 이후 차기작을 고민한 그는 평소 눈여겨 본 소설을 원작 삼아 이를 영화로 재해석하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칸 국제영화제와 미국 아카데미상을 동시에 휩쓴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을 맡은 워너브라더스는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로버트 패틴슨과 마크 러팔로 등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배우들도 봉 감독과의 작업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이런 상황을 의식한 듯 봉준호 감독은 개봉을 앞두고 이달 초 국내 취재진과 만난 기자간담회에서 ‘미키 17’ 이전에도 연출작의 개봉 일정이 계획한 시기와 달라진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감독은 “배우조합 파업 등 현지 상황으로 할리우드의 많은 영화가 개봉 일을 바꿨고 ‘미키17’도 그 여파를 받았다”며 “복잡한 여건과 상황들이 엮여 있었지만 영화의 재편집이나 재촬영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전에도 말했지만 워너브라더스와 ‘감독의 최종 편집본’으로 (연출) 계약을 맺었다”며 “워너는 감독의 크리에이티브 컨트롤을 존중했고, 여러 외적인 요인들로 인한 변화가 있었지만 상호 존중 아래 잘 끝났다”고 말했다.
#“‘미키17’은 발 냄새 나는 SF”
영화의 배경은 곧 다가올 2050년대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택한 이유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우리가 겪게 될 이야기이자 그만큼 현실감 있고 우리 피부에 와닿는 SF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촬영 내내 제작진들과 “발 냄새 나는 SF영화”라는 농담을 주고받았다고도 했다.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곧 다가온 우리의 현실을 다룬 점을 강조한 말이다.
주인공 미키는 위험한 일을 수행하다 죽기를 반복한다. 감독은 “죽는 게 직업인 가엽고 불쌍한 청년”이라며 “항상 위험하고 험한 일에 투입이 되고 죽어도 산업재해로 처리되지도 않는 극한 직업”이라고 설명했다. 미키 17이라는 이름은 17번 죽었다는 뜻이다.

봉준호 감독의 도전에 합류한 로버트 패틴슨은 최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과 액션 시리즈 ‘더 배트맨’ 등에서 활약한 배우다. 한국 감독과의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지금 전 세계에서 봉준호 감독 같은 분은 네다섯 명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 모든 배우들이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연출자”라고 신뢰를 보였다. “특별한 세계관, 개인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이야기를 추구하는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는 로버트 패틴슨은 “오래전 ‘살인의 추억’을 봤는데 말도 안 되는 것과 심각한 상황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그런 영화를 저도 하고 싶었고 ‘미키 17’에서 저를 캐스팅하고 싶다고 했을 때 빨리 답했다”고도 돌이켰다.
배우들이 봉준호 감독에게 갖는 믿음은 각별하다. 로버트 패틴슨이 지난달 초 내한해 취재진과 만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한 데 이어 또 다른 주연인 마크 러팔로와 스티븐 연도 내한해 20일 봉 감독과 함께 기자회견에 나선다. ‘미키 17’이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한국에서 개봉하는 만큼 직접 관객과 만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감독을 향한 배우들의 굳은 믿음이 엿보이는 행보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