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딛고 WBO 아시아퍼시픽 챔피언 올라…4월 26일 노나카 유키와 아시아 통합타이틀매치

복싱계가 과거 영광을 잃어가는 시점에서, 이 대결은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전성기 두 슈퍼스타가 맞붙는 경기가 침체된 복싱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란 기대를 받았다. ESPN이 ‘구원’이라는 표현을 쓴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 매치업은 단순한 챔피언전을 넘어, 복싱이라는 스포츠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복싱의 ‘구원’이 정말 절실한 곳은 미국이 아닌 한국이다. 한국 복싱은 전성기를 지난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존폐 위기에 놓여있다. 한때 김기수, 장정구, 홍수환으로 이어지는 황금기를 누렸던 한국 복싱은 이제 대중 관심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2024년 1월, 김예준 선수가 현 WBA, WBC, IBF, WBO 슈퍼 밴텀급 통합 챔피언이자 ‘괴물’로 불리는 이노우에 나오야에 도전장을 냈다. 이노우에는 매니 파퀴아오를 뛰어넘는 선수이자, 현 세대 모든 복서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최상위권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이노우에와 대결은 한일 대결이자, 한국 남자 복서가 18년 만에 도전한 세계 챔피언전이었다. 그러나 이토록 역사적인 순간도 한국에서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어쩌면 한국 복싱계를 구원할 수 있는 경기가 4월 26일 한국에서 열린다. WBO 아시아퍼시픽 슈퍼미들급 챔피언 윤덕노(29, 수원태풍체육관)가 OPBF(동양태평양복싱연맹) 3체급 석권자이자 현 슈퍼미들급 챔피언 노나카 유키(47, 미쓰키복싱짐)와 아시아 통합타이틀매치를 펼친다. 이는 한국 복싱 사상 최초의 아시아 통합타이틀매치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지금 한국 선수 중에서 제가 유일하게 권위 있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이 벨트는 절대 뺏길 수 없다”는 윤덕노의 목소리에는 한국 복싱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단호한 결의가 묻어났다. 그의 이러한 각오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현재 WBO 아시아 퍼시픽이라는 권위 있는 타이틀을 보유한 유일한 한국 선수라는 그의 위치는 특별하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 다른 결과는 생각하지 않는다” 2월 18일 수원 태풍체육관에서 진행된 일요신문과 인터뷰에서 윤덕노는 단호하게 말했다. 한국 복싱 미래가 걸린 이번 경기를 앞둔 그의 눈빛에서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53전을 치른 베테랑 노나카 유키와 대결을 앞둔 윤덕노(11전 9승 2패 7KO)는 흔들림 없는 자신감을 보였다. 일요신문은 그의 복서로서 여정과 성장 스토리를 들어봤다.
윤덕노의 삶은 평범하지 않았다. 그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은 볼티모어 빈민가에서 자라나 이를 복싱으로 극복한 저본타 데이비스 스토리와 닮아있기도 했다. 윤덕노 역시 어린 시절부터 소위 고아원이라고 불리는 보육원에서 고등학교 졸업까지를 보내야 했다.
복싱과 첫 만남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윤덕노는 “체육 선생님께 복싱을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 체육관을 소개해주셨는데, 처음에는 그냥 복싱 체육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종합격투기 체육관이었다”고 회상했다. 1~2년간 종합격투기를 배우면서 오히려 그는 복싱에 매력을 느꼈다. 그는 “종합격투기는 복싱, 주짓수 등 여러 가지 기술을 종합적으로 배워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복싱이 특히 재미있더라. 그래서 복싱 체육관을 따로 다니면서 배우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운동의 길을 택한 것은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부모님이 계셨지만, 우리를 돌볼 수 없는 상황이어서 보육원에 가게 됐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시설이었기에 기본적인 생활은 가능했지만, 마음은 늘 허전했다. 대학에 가려면 등록금에 생활비, 자취비용까지 필요한데 그런 여유가 전혀 없었다. 빨리 일자리를 찾아 생활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힘든 과거를 회상하면서도 윤덕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호주 워킹 홀리데이로 브리즈번에서 시작한 새로운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복싱을 놓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농장 일을 했다. 딸기 농장, 체리 농장 등에서 주로 일했다”면서 “호주는 복싱 인기가 상당해 선수 풀도 한국보다 좋았다. 낮에는 농장 일을 하고, 일이 끝나면 복싱 체육관을 찾았다. 농장에서 번 모든 돈을 복싱 트레이닝에 썼고 완전히 몰두했다. 농장 일과 복싱 트레이닝 딱 두 가지밖에 안 했다. 관광 한 번 가본 적이 없다”고 회상했다.
그는 호주 생활 중 갈등이 있던 매니지먼트 사가 결국 계약을 해지해줘 자유가 됐다. 2년 동안 호주 생활을 하면서 프로 무대에도 데뷔했다. 그는 4전 3승 1패 프로 전적을 기록했다. 윤덕노는 “한 경기는 공식 기록에 등록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4경기를 치렀다”면서 “호주에서 새로운 복싱 훈련 문화를 배웠다. 호주는 훈련에서도 개인 자율성을 중요시한다. 나와 맞진 않았지만 시간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고, 각자 페이스대로 훈련할 수 있다. 외국 선수들과 스파링도 많이 하면서 실력도 늘었다”고 말했다. 호주에서 시간은 그에게 값진 경험이 되었고, 이제 그는 한국 복싱계에서 인정받는 선수로 성장할 준비가 돼 있었다.
하지만 순항하던 인생에 예기치 않은 장애물이 나타났다.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본격적인 프로 활동을 호주에서 이어가고자 2020년 비자 연장을 위해 잠시 한국에 들어왔는데, 그때부터 코로나로 인해 더 이상 호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언제 국경이 다시 개방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는 “당시에는 정말 막막했다. 시골에 내려가서 1년 넘게 농사일을 하면서 지냈다. 막노동을 하기도 했다. 그때는 내가 다시 링에 설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렇게 끝내기엔 아쉽다’는 생각에 윤덕노는 2021년, 마지막 도전을 위해 상경했다. 그때 주변 추천으로 만난 사람이 최락환 수원태풍체육관 관장이었다. 이 만남은 인생을 바꿔 놓았다. 그는 “관장님은 제 부족한 부분을 하나하나 보완해주셨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정신적으로도 큰 힘이 돼 주셨다. 특히 시합 영상 분석을 꼼꼼히 해주시면서 내 장단점을 정확히 짚어주셨다”고 말했다. 관장님의 세심한 지도는 경기 스타일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하지만 챔피언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2024년 6월, 도쿄 고라쿠엔홀에서 치른 첫 타이틀 방어전은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큰 시련이 되었다. 타이슨 고키와 경기에서 시작 1분여 만에 상대를 다운시키며 유리한 고지를 점했지만, 곧 형세가 역전되어 1라운드 1분 25초 만에 TKO패를 당했다.
다행히 프로모터인 신홍균 더원 프로모션 대표가 미리 ‘패배 시 즉각적인 리턴매치를 한국에서 개최한다’는 조항을 계약에 포함시켜 뒀다. 한국에서 열린 리턴매치 결과는 대역전극이었다. 7라운드 2분 2초 만에 TKO승을 거두며 잃었던 WBO 아시아태평양 슈퍼미들급 챔피언 벨트를 되찾았다.
윤덕노는 “타이슨 고키와 첫 번째 경기에서 인생 처음으로 KO패를 당했다. 상대를 너무 쉽게 보고 들어갔던 게 패인이었다. 하지만 리턴매치에서 내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었고, 자신감도 많이 회복됐다”고 말했다.
4월 26일 통합 타이틀전을 앞두고 각오는 더욱 단단해 보였다. 윤덕노는 “이번 경기는 내 인생 터닝포인트다. 노나카 유키는 48세 베테랑 선수지만 결코 방심할 수 없다. 53전을 치른 엄청난 경험을 가진 강자다. 그럼에도 나는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도 윤덕노의 하루는 정확한 시간표처럼 흘러간다. 그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40분 정도 러닝을 한다. 이후 오전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오후 2시부터 4시 반까지가 내 훈련 시간이다. 그때 가장 집중해서 훈련한다. 그 후에는 밤까지 코치 일을 하고 집에서 쉰다. 이런 일정을 매일 반복한다”고 말했다.
이런 철저한 루틴은 시합 준비 기간에도 변함없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훈련 프로그램은 물론, 식단까지 거의 동일하게 유지한다. 시합 전날에도 가벼운 운동으로 컨디션을 조절할 뿐, 특별히 무언가를 바꾸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윤덕노의 가장 큰 특징은 끊임없는 펀치다. KO 비율도 꽤 높다. 그는 "나는 펀치가 특별히 센 편은 아니다. 대신 주먹을 많이 던지는 스타일이다. 밀가루 반죽하듯이 계속해서 펀치를 던져서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게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그의 투지는 몸에 새긴 타투에서도 드러난다. 몸에 새겨진 호랑이 문신에 대해 그는 “보통 타투를 걱정하시는 부모님과 달리, 내 어머니께서는 오히려 ‘운동선수는 타투가 있어야 멋있다’며 권하셨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지금은 이 호랑이 타투가 내 정체성이 됐다. 호랑이의 용맹함과 물러서지 않는 기상이 내 마음가짐을 표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 복싱의 새로운 희망으로 꼽히던 강종선, 김예준 선수가 연이어 일본 선수들에게 패배를 맛보았다. 이제 한국 복싱 마지막 보루와도 같은 윤덕노는 한국 복싱을 어떻게 평가할까. 그는 “일본과 비교하면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너무 멀다. 선수 층도 얇고, 환경도 열악하다. 특히 내 체급인 슈퍼미들급은 스파링 파트너를 구하기도 힘들 정도다. 일본 선수처럼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대부분은 코치나 식당 일 등 부업을 하면서 운동을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윤덕노는 “최근에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더원 프로모션 같은 곳에서 시합을 많이 열어주고 있고, 복싱을 발전시키려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팬들의 관심만 조금 더 있다면 한국 복싱도 부활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 그는 신중하면서도 야심찬 모습을 보였다. 윤덕노는 “우선은 이번 통합 타이틀전에서 승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 후에는 세계 무대에 도전하고 싶다. 카넬로 알바레스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과 겨루는 게 내 꿈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은퇴 이후 어떤 삶을 꿈꿀까. 윤덕노는 “만약 선수 생활을 통해 충분한 성과를 거둔다면 산이나 바다가 있는 곳에서 여유 있는 조용한 삶을 살고 싶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돈을 벌고, 후배들을 양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국 복싱 부활을 바라는 팬들을 향해 진심 어린 메시지를 전했다. “한국 복싱에 더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우리 선수들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응원이 있다면 한국 복싱이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그 희망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저부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