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계엄법 위반 혐의 당시 징역형 집유, 재심서 계엄 무효…‘집권 유지 수단’ 역대 군부 계엄령 관련 판결 이어져

일요신문 취재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제3형사부는 지난 2월 6일 계엄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된 A 씨에 대한 재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1972년 12월 19일 육군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지 53년 만이다.
공소 사실에 따르면 대학생이었던 A 씨는 1972년 11월 30일과 12월 1일 같은 학교 학생들과 함께 유신헌법을 반대하는 법률토론대회 개최를 위한 사전 준비와 이에 대한 유인물을 작성하는 등 정치활동 목적의 집회를 연 혐의로 체포됐다.
당시 A 씨는 공동피고인들의 하숙방을 찾아가 “고등학교 학생들도 (유신헌법 반대) 유인물을 돌렸다는데 우리 대학생들이 가만히 있어서야 되겠느냐”며 “학교로 가서 법대 전체의 법률토론 대회를 열자”고 건의하고 다음날 한 다방에서 개강파티를 명목으로 한 집회를 가졌다.
계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 씨는 1972년 12월 19일 육군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적용된 법률은 1981년 4월 개정되기 전 옛 계엄법이다. 당시 재판부는 A 씨가 옛 계엄법 제13조에 따라 발령된 포고령 제1호 제1항 ‘모든 정치활동 목적의 실내외 집회 및 시위를 일절 금하고, 정치활동 목적이 아닌 집회는 허가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위반했다고 판시했다.
A 씨는 항소했고 이듬해인 1973년 1월 12일 육군고등군법회의는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그로부터 51년이 지난 2024년 7월 18일 A 씨는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재심사유가 있다고 판단해 그해 9월 6일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재심 재판부는 1972년 계엄 포고 자체가 위헌이고 위법해 무효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계엄 포고는 1972년 10월 17일 대통령특별선언을 통해 기존의 헌정질서를 중단시키고 유신체제로 이행하고자 그에 대한 저항을 사전에 봉쇄하기 위한 것이 분명하다”며 “계엄포고가 발령될 당시 국내외 정치상황이 법에서 정한 ‘군사상 필요할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2018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옛 계엄법 13조에서 정한 ‘군사상 필요할 때’란 전쟁 또는 전쟁에 준하는 사변으로 국가의 존립이나 헌법의 유지에 위해가 될 만큼 극도로 사회질서가 혼란해진 상태가 현실적으로 발생해 경찰력만으로는 도저히 비상사태 수습이 불가능하거나, 군병력 동원으로 직접적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꼭 필요하게 된 때를 뜻한다.
즉, 유신 계엄의 경우 국가 비상 상황이 아닌 박 전 대통령의 장기 집권 및 지배 체제 강화를 위해 사용됐으므로 계엄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본 것이다.
포고 내용에 있어서도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도록 한 규정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재심 재판부는 “계엄 포고가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발령됐고, 그 내용도 영장주의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도 위배되며 언론·출판과 집회·결사의 자유 등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이 계엄 포고는 당초부터 위헌·무효이므로 계엄포고를 위반했음을 전제로 한 공소사실은 ‘범죄로 되지 아니하는 때’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발동 요건 못 갖춘 계엄령 줄줄이 무효

2018년 11월 대법원은 1979년 10월 18일 박정희 정권이 부마민주항쟁에 대해 내린 부산·마산 계엄령을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인 부마민주항쟁을 탄압하기 위한 것일 뿐, ‘군사상 필요할 때’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요건에 부합하지 않아 위헌·위법”이라고 봤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2018년 12월엔 1980년 전두환 정권 시절 삼청교육대 설치 근거가 된 계엄포고 제13호가 발령 절차와 내용 모두 위헌·위법해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연이어 나왔다. 유신 계엄과 마찬가지로 당시 상황이 법에서 정한 ‘군사상 필요할 때’에 해당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내용 역시 헌법에 보장된 국민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1980년 삼청교육대에 수용됐다가 탈출한 혐의로 기소된 60대 남성이 지난 1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징역 10개월 실형을 선고받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와 남동생 전태삼 씨도 2024년 12월 26일 재심을 통해 무죄를 확정받았다.
한편,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석열 대통령 측은 12·3 비상계엄에 대해 “국민들로 하여금 야당의 국회 독재를 막아달라는 뜻에서 선포한 것으로 정당한 통치행위였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다만 지난 2월 20일 열린 첫 형사재판에서는 “기록 검토를 하지 못했다”며 공소사실 인정 여부도 밝히지 않았다. 법원은 앞으로 열릴 재판을 통해 비상계엄 선포 당시 상황이 국가 비상사태에 해당했는지와 그 절차 등을 살펴볼 계획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