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용·김성근 이어 세 번째 대기록…한국시리즈 준우승만 4차례, 올 시즌 어떤 마침표 찍을지 주목

김경문 감독이 1000승을 달성한 다음 날인 13일,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은 구단을 통해 김 감독에게 “KBO 통산 1000승 금자탑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축하 서한을 보냈다. 이날 김 회장은 “최고 명장의 리더십이 이글스의 새로운 역사와 함께 영원한 전설로 기억되길 기원한다”는 격려 메시지와 함께 기념 선물과 화환도 보냈다.
김 감독은 2024년 6월 최원호 감독의 자진 사퇴로 공석이 된 한화 사령탑 자리를 맡게 되면서 한화 제14대 감독으로 부임했고, 지난 시즌 8위(승률 0.488)를 넘어 올 시즌엔 2위(승률 0.596)를 달리며 선두를 추격 중이다.
김 감독의 1000승 달성은 KBO리그 44년 역사상 단 3명만이 가진 진기록이다. 김응용 전 감독의 1554승과 ‘야신’ 김성근 전 감독의 1338승 이후 세 번째 1000승 달성 감독이다. 2004년 두산에서 사령탑으로 데뷔한 김 감독은 두산에서 512승, NC에선 384승을 챙겼다. 그리고 지난해 6년 만에 프로야구 감독으로 복귀해 104승을 추가했다.
김 감독의 지도자 이력에는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명암이 존재한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전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획득하며 명장 반열에 올라섰지만 2020 도쿄올림픽은 4위에 그치며 메달 획득 실패해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이후 대표팀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김 감독은 미국 LA 다저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코치 연수로 또 다른 배움의 시간을 가졌다.
당시 김 감독을 미국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김 감독이 60이 넘은 나이에 마이너리그 팀의 코치 연수를 자처했던 건 프로야구 감독으로 현장에 복귀하고 싶은 열정과 미련이 남았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도쿄올림픽 4위로 메달 획득에 실패한 데 대한 큰 아픔을 안고 있었다. 다른 누구보다 선수들에 대한 미안함이 그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대표팀 감독인 나를 욕하고 비난하는 건 괜찮다. 그런데 선수들에게 너무 심한 비난이 뒤따르는 걸 보고 정말 마음이 아팠다. 선수들은 올림픽 무대에서 최선을 다했다. 결과가 뒤따르지 않았을 뿐이다. 대표팀에 뽑힌 투수들 중 국제대회를 경험한 선수들이 적다 보니 KBO리그 정규시즌에서 보인 기량들을 국제대회에서 다 꺼내 놓지 못했다. 하지만 그 또한 지도자의 몫이다. 나를 비롯한 코칭스태프가 비난을 받아야 할 몫이었다.”
당시 김 감독은 자신의 연락을 받고 태극마크의 무게를 기꺼이 받아준 오승환(삼성)에게 진심을 담아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오승환은 야구계 후배지만 내가 정말 존경한다. 대표팀 감독을 맡고 (오)승환이에게 전화해서 대표팀이 어려우니 와서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는데 승환이는 다른 말 붙이지 않고 곧장 대표팀에 합류했다. 그랬던 선수가 도쿄올림픽에서 큰 상처를 받았다. 그때 승환이가 비난받는 걸 보고 속으로 많이 울었다.”

김경문 감독은 롯데 김태형 감독과 긴 우정을 나누고 있다. 선수 시절 OB(두산) 베어스 포수조 선후배로 인연을 맺었고, 김경문 감독이 두산 사령탑에 있을 때 감독과 배터리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함께했다. 그러다 김태형 감독이 두산을, 김경문 감독이 NC 감독을 맡을 당시 2016년 한국시리즈에서 맞대결을 펼쳤다. 결과는 4승 무패로 두산의 압도적인 우승이었다. 우승이 확정된 뒤 승장인 김태형 감독이 인터뷰하다 패장 김경문 감독을 떠올리며 눈물을 보인 적이 있었다. 김태형 감독은 이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눈물을 흘린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김경문 감독님과는 어렸을 때부터 형, 동생으로 같이 지냈고, 감독님으로 모시다 감독 대 감독으로 경기를 하고, 2016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이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마지막 경기가 끝난 후 상대팀이었던 김경문 감독님이 내게 오셔서 손잡아주고 뒤돌아 가시는데 그 모습이 잊히질 않았다. 승부의 세계가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들더라.”
김경문 감독은 이후 김태형 감독의 ‘눈물의 인터뷰’를 이렇게 회상한다.
“김태형 감독은 선수 시절부터 나랑 함께한 시간이 많았다. 내가 코치 때 선수 생활을 했고, 내가 감독 때 코치를 했다. 2등은 패배자라고 하지만 나도 당시에는 최선을 다했고, 김태형 감독의 승리를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었다. 나중에 김 감독이 눈물 흘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도 또 뭉클해졌던 기억이 있다.”
흥미로운 건 지난 12일, 김경문 감독이 1000승을 올린 경기의 상대 팀 감독이 김태형 감독이었다는 점이다. 김태형 감독은 김경문 감독의 1000승 달성을 축하하면서 “(감독의) 공백기가 있었지만 (현장에) 복귀하셔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게 대단하다”며 “내가 원래 기록을 많이 만들어준다”라고 호탕한 모습을 보였다.
한화는 올 시즌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한 달 반 동안 1위 자리를 지키는 등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우승을 목표로 한다. KBO리그 최강 원투펀치인 코디 폰세와 라이언 와이스의 호투와 류현진, 문동주로 이어지는 선발 로테이션은 가장 안정된 마운드를 구축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한화는 지친 불펜 난조로 인해 역전패를 반복하면서 소중하게 지켜온 1위 자리를 LG에 내줬다. 8월 13일 기준 1위 LG와는 1.5경기 차. 앞으로 LG가 34경기, 한화가 36경기를 남겨둔 상태에서 특히 한화를 응원하는 일부 팬들은 김경문 감독이 지향하는 ‘믿음의 야구’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12일에는 서울 한화그룹 본사 앞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 인근에서 김경문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경기 운영을 비판하는 내용의 트럭 시위도 있었다. 트럭 시위를 이끈 이들은 성명에서 “리그 2위라는 순위는 선수들의 투혼화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며 “변함없는 타순과 불펜 혹사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한화 팬들이 김경문 감독의 선수단 운영 중 가장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는 게 노시환의 4번 기용이다. 노시환은 2년 연속 20홈런 고지에 올랐지만 올 시즌 타율과 출루율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고 삼진이 리그 1위, 병살타가 리그 2위다. 그럼에도 김경문 감독은 4번타자 노시환을 향한 믿음이 굳건하다.
이와 관련해서 장성호 KBSN스포츠 해설위원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한화가 계속 1위를 유지하고 있다면 노시환 4번타자 기용과 관련해서 더 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1위에서 2위로 떨어졌고, 노시환이 흐름을 끊는 플레이를 하니까 일부 한화 팬들이 비난의 목소리를 키우는 듯하다. 다른 감독이었다면 이런 상황이 반복될 때 노시환을 6번이나 7번으로 내려서 부담을 덜어줄 수도 있는데 김경문 감독은 돌아가지 않고 직진을 고수했다. 이건 누가 뭐라고 하기가 어렵다. 김경문 감독의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정민철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김 감독의 운영 방식을 놓고 왈가왈부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리그에서 1000승을 달성한 명장 감독에게 라인업을 조정하라는 말을 어떻게 하겠나. 감독이 4번타자 노시환을 그대로 밀고 가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김경문 감독도 이와 관련된 이런저런 불편한 목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그분이 갖고 있는 리더십의 특징이다. 한화가 우승에 도달하려면 노시환이 4번에서 제 역할을 해줘야 한다. 김 감독은 분명 노시환이 그 자리에 맞는 활약을 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건 시즌 마치고 결과로 평가받아야 할 문제다.”
한화는 최근 3연패 이후 3연승을 거두며 다시 상승세에 불을 지피고 있다. 김경문 감독의 1000승 달성이 선수들에게 전하는 울림이 컸다는 후문이다. 김 감독은 이전 미국에서 진행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2인자의 설움’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다.
“2등을 하면 항상 끝맺음이 슬프다. 특히 한국시리즈에서의 2등은 아주 초라해진다. 그런데 그 초라함 속에서 배울 게 많았다. 우승은 그 순간의 기쁨이 크지만 2등은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배움을 갖게 하는 것 같다.”
김 감독은 감독 인생의 문을 열게 했던 2004년 두산 베어스 감독이 되기 직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2003년 두산은 김인식 감독 사퇴 후 선동열 감독을 영입하려 했다가 선 감독이 은사 김응용 삼성 감독의 부름에 삼성 수석코치로 가게 되면서 배터리 코치 김경문에게 신임 감독 자리가 주어졌다.
“당시 구단으로부터 감독직 제의를 받고 잠실야구장에서 봉은사까지 걸어갔던 적이 있었다. 나의 선수 시절부터 코치 때의 모습을 떠올리며 ‘내가 감독이 되면 적어도 이런 지도자가 돼야지’ 라는 각오를 다지며 걸어갔다. 지금까지 프로야구와 대표팀 감독을 맡아 선수들을 이끌면서 그때 내가 처음 가졌던 마음가짐이나 각오를 잊지 않고 지키려고 노력했다.”
김경문 감독의 1000승은 ‘믿음’ 속에서 꽃피운 서사를 안고 있다. 수년째 하위권을 맴돌았던 한화가 정규시즌 1, 2위를 오르내리며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건 김 감독의 ‘믿음의 야구’가 한몫했다는 걸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중요한 건 김경문 감독과 한화 이글스가 그 마침표를 어떻게 찍느냐의 여부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