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있는 8월 방문 파격 시선, 임기 말 반일 강화 우려도…지지율 17%p 껑충 이시바 내각 순풍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23일 밤 한일정상회담을 마친 뒤 이재명 한국 대통령과 공동기자 발표에 나서 “한일 관계를 미래 지향적이고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양 정상은 지방 창생, 저출산·고령화, 농업, 재해 등 공통의 사회경제적 과제에 대해 당국 간 협의 틀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일본 정부는 이번 회담에 대해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2시간 넘게 진행된 회담은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겼으며, 소수 인원 회담의 경우 당초 20분이 예정돼 있었으나 1시간 가까이 이어질 만큼 열기가 뜨거웠다. 이 자리에서 이시바 총리는 이 대통령에게 대미(對美) 협상과 관련한 조언을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마이니치신문은 “회담장 밖에서도 웃음소리가 새어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며 “총리 부부가 주최한 만찬에서는 ‘이시바 특제 카레’가 제공됐다”고 보도했다. 카레 애호가로 유명한 이시바 총리는 “인도산 가람 마살라 향신료와 고향 돗토리의 배 와인이 비법”이라고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만찬상에는 카레 외에도 이 대통령의 고향 요리인 안동찜닭과 안동소주, 돗토리현 맥주가 나란히 올랐다. 김치를 고명으로 올린 한국식 장어구이, 복숭아를 좋아하는 이 대통령의 취향을 고려해 오카야마산 백도도 포함됐다. 독서가로 알려진 이시바 총리는 “이 대통령의 자전적 에세이를 일본어 번역판으로 읽었다”며 책에 서명을 요청하기도 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만찬 이후 두 정상은 부부 동반으로 통역만 대동한 채 별실로 자리를 옮겨 한층 담소를 이어갔다”고 한다. 신문은 “두 정상이 정치 이력상 ‘비주류’ 출신에서 최고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는 공통점을 확인하며 서로의 경험을 공유했다”고 전했다.

한국의 대통령이 미국보다 먼저 일본을 방문한 것은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처음이다. 또한, 취임 후 불과 80일 만에 일본을 찾은 것은 역대 한국 대통령 가운데 두 번째로 빠른 속도다. 가장 빠른 사례는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낸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으며, 문재인·윤석열 전 대통령의 경우 취임 후 첫 방일까지 약 1년이 걸렸다. 이와 비교하면 이번 방문은 그만큼 이례적이다.
일본 언론이 특히 주목한 것은 ‘8월 방일’이라는 점이다. 아사히신문은 “한국에서는 8월 15일 광복절이 있어 역사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반일 감정으로 이어지기 쉬운 시기”라며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1987년 민주화 선언 이후 취임한 역대 한국 대통령 중 8월에 일본을 방문한 사례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사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자 일본 내에서는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과거 “일본은 적성국가”라고 발언을 한 것이 알려지며 반일·반미 성향의 정치인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일본 내에서는 “한일 관계가 다시 얼어붙는 것 아니냐”는 경계심이 높았다. 그러나 취임 이후 이 대통령이 ‘실용 외교’를 내세우며 대일 강경 기조를 접자 일본 측 반응은 크게 달라졌다.
지지통신은 “이 대통령이 동맹국 미국보다 먼저 일본을 찾은 파격 행보로 일본 정부의 우려를 누그러뜨렸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 대통령이 우호적 관계 구축 의지를 보인 만큼 당분간 한일 관계가 안정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아사히신문 역시 한국이 실리적 외교를 택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봤다.
다만 지지통신은 “한국 대통령은 임기 말에 가까워질수록 반일 색채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며 “일본 측의 불안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3일 한일정상회담 이후 양국 정상은 공동기자 발표만 진행했을 뿐,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았다.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역사문제 질문이 나오면 위험하다”고 그 배경을 설명하며, 양국 관계의 개선 기조가 아직 ‘살얼음판’ 위에 있음을 시사했다. 마이니치신문 역시 “역사문제가 잠재적 리스크로 남아 있다”며 “이시바 총리의 거취에 따라 다시 냉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일각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의 이번 방일을 두고 “정치적 계산이 깔린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반일·반미 강경 이미지를 희석하는 동시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는 추측이다. 아사히신문은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행정부에 대응하기 위해 이재명 정권이 일본과 안정적 관계를 구축하려 한다”고 짚었다.

한일 관계가 우호적 관계를 이어가는 가운데, 일본 정치권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온건파’ 이시바 총리의 거취로 향하고 있다.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참패로 자민당 내부에서는 ‘이시바 퇴진론’이 고개를 들었고, 지지율도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분위기는 반전 중이다. 교도통신이 8월 23~2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시바 내각 지지율은 전달보다 12.5%포인트(p) 오른 35.4%를 기록했다. 요미우리신문도 39%(+17%p), 마이니치신문은 33%(+4%p)로 일제히 상승세를 보였다. ‘사임해야 한다’는 여론도 눈에 띄게 줄어드는 모습이다.
순풍이 불고 있는 배경에 대해, 자민당 전 간부는 “최근 이시바 총리의 긍정적인 노출이 많았다”고 분석한다. 8월 중순 일본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8월 20~22일 요코하마시에서 열린 아프리카개발회의(TICAD)에서는 공동의장을 맡아 34개국 정상과 잇따라 회담했다. 이어 23일에는 이재명 대통령과 17년 만에 한일 정상 공동문서를 발표, 양국 외교 관계가 진전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자민당 내 반발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압박이 총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일례로 구 ‘아베파’ 간부이자 전 자민당 간사장인 세코 히로시게 의원이 TV 프로그램에서 이시바 총리를 맹비난했지만, 곧바로 “비자금 스캔들로 탈당한 인물이 무슨 자격으로 말하느냐”는 역풍에 시달렸다.
정치학자 다니구치 나오코 게이오대 교수는 “자민당 지지층의 주류인 온건 보수층은 이시바 총리가 물러나면 다카이치 사나에 같은 극우 성향 인물이 총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며 “총리 거취를 둘러싼 당내 힘겨루기가 이제 본격적으로 불붙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