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반도체법 말 바꾸기 논란도…국힘 “매표” 비판, 민주 ‘이재명 브랜드’ 반드시 추진 기류

이재명 대표는 그동안 여러 차례 말을 번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시사하는 발언이다. 이 대표는 2024년 11월 4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원칙과 가치에 따르면 고통이 수반되더라도 강행하는 것이 맞겠지만, 현재 대한민국 주식 시장이 너무 어렵고 여기에 투자하고 있는 1500만 주식투자자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아쉽지만, 정부·여당이 밀어붙이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동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같은 해 12월 10일 금투세는 본회의에서 폐지가 확정됐다.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진보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쏟아졌다. 조국혁신당의 황운하 원내대표와 차규근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은 “제1야당 대표가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세금 깎아주는 일에 동참하면 민생은 누가 지킨단 말인가”라며 “깊은 고민도 없이 눈앞의 표만 바라본 결정”이라고 꼬집었다. 이 대표가 표를 얻기 위해 민주당이 지향하는 가치나 공약을 뒤집는 포퓰리즘적인 행보를 보인다는 지적이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이날 “이 대표는 제1야당 대표로서 노동시간 적용 제외와 같은 반노동·반인권적 논의에 헛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며 “실용주의, 성장주의 운운하며 정권 창출에만 혈안이 돼 친기업·반노동 정책을 추진한다면 노동자들의 눈에는 윤석열 정권과 매한가지”라고 꼬집었다. 2월 3일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연구개발직 조합원 904명을 대상으로 특별법 찬반을 조사한 결과 90%가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은 6%에 그쳤다.
당내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인영 민주당 의원은 2월 5일 페이스북에 “근로시간 단축의 역사에서 민주당은 항상 노동자의 편이었다”며 “(민주당의) 근로시간 단축의 역사에 역행하고, 민주당의 노동 가치에 반하는 주장으로 ‘실용’도 아니고 ‘퇴행’일 뿐”이라고 적었다. 노동계와 당내 반발이 거세지자, 민주당은 반도체특별법에서 주 52시간제 예외 조항을 빼기로 입장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국민의힘이 반발했다. 2월 18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반도체특별법 토론회에서 ‘몰아서 일하기가 왜 안 되느냐고 묻는데 할 말이 없더라’라며 사실상 근로 유연성 확보에 동의했다”며 “그런데 불과 2주 만에 입장을 또 바꿨다. 요즘 들어 성장을 외치던데 정작 성장한 건 이 대표의 거짓말 리스트뿐”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2월 18일 유튜브 채널 ‘새날TV’에서 “국민의힘은 보수가 아니다. 민주당이 중도·보수의 포지션을 갖고 있다”고 했다. 19일에도 “민주당은 원래 성장을 중시하는 중도·보수 정당”이라며 “오히려 국민의힘이 극우·보수 또는 거의 범죄 정당이 돼 가고 있다”고 말했다. 대선을 앞두고 스펙트럼을 넓히려는 이 대표의 전략이 잘 담겨 있는 발언이다.
#민생 회복 소비 쿠폰 13조
민생회복지원금을 두고는 포퓰리즘 논란이 뜨겁다. 이 대표는 2월 10일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공정성장’과 ‘잘사니즘’을 비전으로 밝혔다. 이 대표는 성장의 기회와 결과를 균등하게 나누는 경제 성장을 공정성장이라고 했다. 잘사니즘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모든 국민이 함께 잘 사는 사회라고 말했다. 두 가지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한국 경제의 회복과 성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회복과 성장을 위해서는 30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여야가 추경에 합의할 수만 있다면, 특정 항목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이 ‘현금 살포 공약’이라고 반발하고 있는 민생회복지원금 포기를 시사한 대목으로 읽힌다.
그러나 2월 13일 민주당 정책위원회와 민생경제회복단은 34조 7000억 원 규모의 추경안을 공개했다. 이 중 ‘민생 회복 소비 쿠폰’에는 13조 원이 투입된다. 국민 1인당 25만 원이 지급된다.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 계층, 한부모 가족 등은 추가로 1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이외에도 2조 원은 지방정부 지역 화폐 정책 지원에 투입된다. ‘이재명표’ 지역 화폐 사업에 추경 예산 상당액이 배정된 셈이다.
국민의힘은 민생회복지원금 포기를 시사한 이 대표가 말을 바꿨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전 국민에게 지역화폐를 지급하는 정책이 효과는 적은데, 비용은 많이 든다는 입장이다. 이 대표가 세금으로 표를 사는 포퓰리즘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인 송언석 의원은 “이 대표와 민주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가운데 국민을 현혹하려는 매표 행위”라며 “국가 경제와 재정을 위협하고, 미래 세대에 부담을 주는 선심성 퍼주기”라고 비판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추경 규모가 15조~20조 원이 적정하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일시적으로는 효과를 줄 수 있지만 올해 35조를 쓰면 내년에도 35조 이상 추경을 하지 않으면 성장률에 음의 효과를 주게 된다”며 “진통제를 많이 쓰면 지금 당장은 좋지만, 나중에 안 좋은 것처럼 적절한 양의 진통제를 써야 한다”고 했다. 현금성 지원에 대해서는 “그렇게 나눠주는 것보단 어려운 자영업자들에게 지원해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인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정부에서 더 좋은 방안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민주당식 추경안’을 제시했다고 반박했다. 정부·여당과의 협상 카드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당 내부에서는 ‘이재명 브랜드’ 정책이기 때문에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는 기류도 감지된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연일 이 대표와 각을 세우고 있다. 김 지사는 2월 5일 MBN 유튜브 ‘나는 정치인이다’에서 “민주당이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은 정체성을 분명히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월 14일 광주 강연에서는 지역 화폐 공약에 대해 “더 힘들고 어려운 계층에 보다 촘촘하고 두텁게 지원하자. 소득분위 25% 이하에게 민생회복지원금을 준다면 1인당 100만 원씩 돌아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곳간 비었는데…' 기본소득 실험장 된 호남 지자체
영광군 등 일부 전라남도 지방자치단체가 ‘민생경제회복지원금(민생지원금)’을 지급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민생지원금 공약이 실현된 셈이다. 그러나 재정자립도가 낮은 전남 지역 지자체들이 재정건전성을 고려하지 않고 포퓰리즘성 정책을 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명 대표는 2024년 10월 16일 재보궐 선거 때 ‘1인당 연 100만 원의 기본소득’을 전라남도 영광군과 곡성군에서 시범 도입하겠다고 언급했다. 민주당 텃밭인 호남에서 자신의 대표 공약인 기본소득을 실험해 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민주당 소속 장세일 영광군수는 취임식에서 “영광사랑지원금 100만 원을 설날과 추석 2회에 걸쳐 전 군민에게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영광군은 이번 설 명절을 맞이해 지역 화폐인 ‘영광사랑 카드’로 50만 원을 지급했다. 나머지 50만 원은 추석에 지급할 예정이다. 이는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가장 많은 지급액이다. 예산은 약 520억 원이 편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전남 지자체들도 지원금을 지급했다. 보성군의 1인당 30만 원의 ‘보성사랑 지원금’, 고흥군의 1인당 30만 원의 ‘고흥사랑 상품권’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무안군, 구례군, 진도군, 완도군, 강진군 등 다른 지자체도 지역 화폐 지급을 검토하고 있거나 지급할 예정이다.
그러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전남은 26.9%로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가장 낮은 재정자립도를 기록했다. 영광군 재정자립도는 11.72%다. 지역화폐 지급을 검토하는 다른 지자체는 영광군보다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민주당이 호남에서 포퓰리즘성 공약을 실험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