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 ‘지갑이 형님’ 발표하고 왕성하게 활동…설운도 “그의 노래 영원히 남을 것” 태진아 “최고의 가수였다”
![송대관은 1월 17일 방송한 KBS 1TV ‘전국노래자랑’ 서울 성동구 편에 출연해 ‘지갑이 형님’이라는 곡으로 멋진 무대를 선사해 관객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사진=KBS 1TV ‘전국노래자랑’ 방송 화면 캡처](https://storage2.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5/0207/1738910066299550.jpg)
고 송대관의 아내 이 아무개 씨는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어젯밤 몸이 안 좋아 오전에 응급실에 왔는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어젯밤 남편이 설사를 해 너무 기력이 없었다”라며 “병원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켰고 CPR(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사망 선고를 받았다”며 오열했다.
78세의 고령이었지만 고인은 최근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던 현역 트롯 가수였다. 1월 17일 방송한 KBS 1TV ‘전국노래자랑’ 서울 성동구 편에 출연해 ‘지갑이 형님’이라는 곡으로 멋진 무대를 선사해 관객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또한 2월 둘째 주에는 KBS 1TV ‘가요무대’ 녹화도 예정돼 있었다.
그렇지만 올해 들어 송대관은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노래자랑’ 서울 성동구 편이 방송을 탄 것은 1월 17일이지만 실제 녹화는 2024년 10월 15일에 이뤄졌다. 송대관의 소속사 측은 조이뉴스24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몸이 안 좋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완치해 집으로 돌아온 지 일주일 정도 되셨다”며 “새벽에 응급실에 갔는데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한 주 뒤 녹화 예정이던 ‘가요무대’도 이미 출연이 미뤄진 상황이었다. KBS ‘가요무대’ 최헌 작가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원래 다음 주 고인이 ‘가요무대’에 출연하기로 돼 있었는데, 며칠 전 컨디션이 좋지 않아 출연을 미뤄야겠다고 전화했다”라며 “그때까지만 해도 대화를 나눴는데 갑자기 돌아가셨다”며 안타까워했다.
사망 소식과 함께 고인이 그동안 담도암으로 투병해 왔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고 송대관은 2019년 담도암 판정을 받고 투병 생활을 이어오다 최근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고인의 아내 이 씨는 “그동안 많이 아팠는데 치료가 잘됐다”며 “담도암이었는데 5년이 지나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힘겹게 담도암을 극복해 완치 판정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런 컨디션 난조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가요관계자들이 고인의 사망 소식을 더욱 안타까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송대관은 꾸준히 신곡을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지만 2018년 6월 신곡 ‘한 번 더’를 발표한 이후 한동안 앨범을 발매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2019년에 담도암 판정을 받은 뒤 치료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담도암을 극복한 송대관은 완치 판정을 앞둔 2024년 11월 7일 새 앨범을 발매했는데 타이틀곡이 바로 ‘지갑이 형님’이다. 앨범 ‘지갑이 형님’ 자켓 이미지.](https://storage2.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5/0207/1738910086084717.jpg)
이처럼 6년여 만에 신곡을 발표하고 다시 한 번 왕성하게 활동을 시작하려던 가수 송대관이기에 갑작스런 사망 소식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오고 있다.
![송대관은 12월 2일 방송된 KBS 1TV ‘가요무대’에 출연했는데 이날 무대에서도 신곡 ‘지갑이 형님’을 불렀다. 사진=KBS 1TV ‘가요무대’ 방송 화면 캡처](https://storage2.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5/0207/1738910105339086.jpg)
설운도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얼마 전 현철 선배님을 보냈는데 송대관 선배님까지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면서 “송대관 선배님은 가셨어도, 남겨 놓은 노래들은 영원히 모두의 가슴 속에 간직될 것”이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또 한 명의 4대 천왕 태진아는 유난히 고인과 가까운 사이였다. 송대관과 태진아는 여러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라이벌이자 동료로 남다른 우애를 자랑해 왔으며 함께 전국투어 콘서트를 갖고 라이벌 콘서트를 자주 열기도 했다.
7일 오전 비보를 접한 태진아는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정말 마음이 아프다. 아침 밥상을 차려 놨는데 숟가락을 들지도 못했다”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할 만큼 비통해했다. 오후가 돼서야 엑스포츠뉴스 등 언론사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떠나셨다는 이야기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며 “후배들 잘 이끌어주고, 최고의 가수였다”라고 심경을 밝혔다.
1946년 전라북도 정읍시에서 태어난 고 송대관은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했으나 큰 인기를 끌지 못하며 오랜 무명 가수 생활을 거쳐야 했다. 송대관을 스타덤에 올려 준 노래는 바로 1975년 발표한 ‘해뜰날’로 1976년에는 이 노래로 MBC 최고가수대상까지 수상했다.
1980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며 가수 활동을 중단했던 고인은 1989년 ‘혼자랍니다’를 발표하며 가요계로 컴백해 1989년 ‘정 때문에’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차표 한 장’, ‘네 박자’, ‘큰 소리 뻥뻥’, ‘고향이 남쪽이랬지’ 등의 수많은 히트곡을 선보이며 90년대 가요계를 주름잡았다. 이즈음 현철, 태진아, 설운도 등과 함께 ‘트롯 4대 천왕’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현철과 설운도는 경상도, 송대관은 전라도, 태진아는 충청도 출신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트롯 가수 4명이 동시에 큰 사랑을 받았는데 ‘트롯 4대 천왕’ 가운데 고인만 유일하게 예명을 사용하지 않고 본명으로 가수 활동을 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