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5조 원 미만 기업은 공정거래법 사각지대…“제재 범위 확대하거나 내부 통제·공시의무 강화해야”
자산총액이 5조 원을 넘지 않은 중견기업 오너일가는 이 법의 규제를 받지 않아 종종 사각지대에서 사익을 편취하기도 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행위 금지’ 조항으로 이러한 기업들을 찾아 제재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제재 범위를 확대하거나 내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금지 조항은 ‘공정한 거래 저해 여부’보다 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이 제공됐는지를 기준으로 위법성을 판단한다. 부당한 내부 거래 등을 통해 실제 이득을 얻는 수혜자에 대해서도 과징금을 부과한다.
개정된 법이 시행된 후 2016년까지는 해당 조항 규제 대상이 당시 기준 자산총액 10조 원 이상의 상호출자제한집단으로 한정됐다. 2017년부터는 공정위가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의 기업집단을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정의하면서 이 조항을 지켜야 하는 기업집단이 늘었다. 2020년부터는 공시대상기업집단의 회사들 중 상장 여부와 상관없이 동일인 단독 혹은 다른 특수관계인과 합한 지분이 20%가 넘는 계열사이거나 이러한 회사가 지분 50%를 초과해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너일가의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늘려왔음에도 그 범위를 더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전히 나오고 있다. 소유와 경영이 대체로 분리돼 있는 미국 기업들과 다르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은, 이른바 ‘오너일가’가 운영하는 기업이 더 많기 때문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공시대상기업집단은 88곳이다. 하지만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2023년 분석한 ‘국내 상장 중견기업의 대표이사 현황’에 따르면 국내 상장 중견기업 715곳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 981명 중 오너일가의 비중이 절반(47.9%)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모두 자산총액이 5조 원 미만인 기업으로 일감몰아주기 규제에서 예외다. 공시대상기업집단의 4배 정도 되는 기업이 이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B 기업은 내부거래로 거둔 이익을 A 그룹 지주회사의 지분 매입에 사용했다. B 기업의 최대주주는 A 그룹 회장의 장남 C 씨다. C 씨는 2015년부터 A 그룹 지주회사 지분을 사들였다. B 기업의 지분 매입은 C 씨의 추후 경영 승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외에도 B 기업은 이익잉여금으로 배당금을 지급하며 B 기업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는 오너일가의 곳간 역할을 하고 있다.
A 그룹이 공시대상기업집단이었다면 공정위의 감시망에 포착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공정거래법상 내부거래 규모 200억 원 미만, 계열사 매출액이 전체의 12% 미만이면 일감을 몰아줬다고 보지 않는다. 반대로 이 기준을 넘으면 감시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B 기업은 내부거래 비중뿐 아니라 내부거래액도 200억 원을 넘었다. 하지만 공시대상기업집단이 아니어서 A 그룹은 규제에서 자유롭다.
공정위가 이러한 거래 행위를 ‘불공정’하다고 판단해 오너일가의 부당 지원 행위로 보고 규제한 사례가 없지는 않다. 공정위는 지난해 10월 제일건설이 오너일가 소유의 계열회사에 상당한 규모의 일감을 제공했다며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제일건설의 자산 규모는 2023년 기준 약 3조 7347억 원으로 공시대상기업집단이 아니다.
하지만 부당지원 금지 규제는 기본적으로 거래 불공정성 판단이 필요한 데다 위법성이 인정되더라도 실질적으로 이득을 얻는 수혜자들에 대해 별도 제재 수단이 없다. 제일건설 역시 계열회사 중 한 곳인 제이제이건설이 2018년 배당을 실시해 100억 원이 넘는 금액을 오너일가가 가져갔으나 특수관계인에 대한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남은 아주기업경영연구소 부본부장은 “공시대상기업집단의 범위를 늘리는 것은 가장 쉬운 접근이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은 없는지 상당한 시간을 두고 검토를 해야 한다”며 “그보다 왜 오너일가가 회사를 통해 사익을 편취하려 하는지 근본적인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실을 좀 더 고려한 대안도 얹어진다. 김 부본부장은 “가령 높은 상속·증여세율에 따른 부담이 오너일가의 사익 편취 등 일탈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며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세율을 조정하는 것이 사익 편취 규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부본부장은 “국내 주요 금융사들이 이미 시행 중이듯 중견기업 이사회 내부에 내부통제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도 고민할 만하다. 위원회 소속 이사 과반수를 사외이사로 두고, 이사들이 내부 거래나 사익 편취 등에 대한 우려를 사전에 검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내부통제위원회에서 가결된 안건에서 추후 위법성 문제가 제기될 경우 이사들에게도 관련 법적 책임을 물어 사안을 보다 면밀히 판단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한국증권학회장)는 “공시대상기업집단이 가진 계열회사들도 상당히 많기에 현재 공정위 인력으로 중견기업까지 살펴보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공정위뿐 아니라 상장 중견기업 투자자들이 이들의 내부 거래를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공시 의무를 부여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