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고래 실패 후 남은 유망구조 추가 시추 방침 논란…학자들 “파보지 않으면 몰라, 실패도 가치 있어“

이에 석유공사는 지난 12월 20일 포항 앞바다에서 약 40km 떨어진 대왕고래 유망구조에 시추선 ‘웨스트 카펠라’호를 투입, 47일간 약 1000억 원을 들여 탐사 시추를 진행했다. 그러나 1차 시추 결과, 가스 징후 일부가 포착됐지만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대왕고래는 7개의 유망구조 가운데 석유나 가스가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큰 구조였다.
1차 시추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간 가운데 사업 당위성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월 7일 “의도치 않게 정무적 영향이 개입됐다”고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다른 6개 유망구조 시추를 이어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실과 여당도 추가 시추 필요성에 동의했다. 이에 맞선 야당은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사업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에너지 개발 사업이 여야 정쟁 거리로 전락한 것이다.
오징어와 명태는 대왕고래의 꿈을 이어받을 수 있을까. 답은 일방의 주장보단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사실을 통해 도출해 내야 할 것이다. 일요신문은 지질학자와 에너지공학자 그리고 국내 1세대 석유탐사 전문가에게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 사업을 계속해도 되는지, 그렇다면 남은 유망구조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물었다.
#“자원 부존 확인 시추 통해서만 가능”
전문가들은 “첫 시추 결과만으로 사업 전체를 그만두기엔 이르다”는 공통된 입장을 밝혔다. 대왕고래가 실패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나머지 유망구조에도 석유나 가스가 없다고 단정하기엔 섣부르다는 것이다.
임종세 한국해양대학교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아직 실패냐 성공이냐를 판단하기 이르다. 첫 번째 탐사시추가 이루어진 것이기에 이제 한 발짝 나간 것”이라며 “그동안은 물리탐사를 통해 간접적인 방법으로 많은 가정을 통해 해저 지층을 해석했다면, 이번 시추를 통해 직접 다양한 지층 자료를 얻었기에 이 정보를 정밀 분석해 더욱 신뢰성 있는 해석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환 전남대학교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 역시 “대왕고래는 가스포화도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끝이 난 거다. 다만 지질학적으로 지층이 서로 연결된 오징어나 명태로 가스가 고여있을 수는 있다. 추가 시추를 통해 이 점을 확인해 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만, 40년 경력의 국내 1세대 석유탐사 전문가인 박근필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명예연구원은 “석유공사가 명확한 근거 자료를 공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순히 ‘(석유구조가) 좋다’는 말만으로 짐작할 순 없다”면서도 “데이터에 신뢰성이 있다면 당연히 추가 시추를 해야 한다”고 했다.
지하에 유전 자원이 존재하기 위해선 덮개암, 저류암, 근원암 그리고 트랩까지 석유구조를 이루는 4가지 요소가 모두 있어야 한다. 유기물 함량이 높은 지층인 근원암에서 석유가 생성되기 시작하면 저류암을 통해 가스와 석유가 오가며 저장이 된다. 덮개암은 석유가 위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뚜껑 역할을 한다. 때문에 두터울수록 더 많은 석유와 가스를 보관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지질 구조 전체 모습을 트랩이라고 한다. 대왕고래에 경제성이 없었다는 말은 이 석유구조 안에 충분한 양의 탄화수소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비슷한 석유구조를 공유하는 인근 유망구조에도 가스가 없을 가능성이 높은 건 아닐까. 전문가들은 “알 수 없다”고 답했다. 탄화수소의 부존 확인은 오로지 시추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망구조를 그릇에 비유한다면, 물리탐사로는 그릇의 존부와 크기만 확인할 수 있을 뿐 그 안에 든 것이 석유인지 물인지는 직접 열어보기 전까지 알 수 없다. 즉, 대왕고래가 빈 그릇이었다고 해서 그 옆의 유망구조도 비었는지는 열어보지 않는 이상 모른다는 것이다.
반대로 물리탐사에서 화석 연료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와도 실제 시추 결과는 예상과 전혀 다를 수 있다. 임종세 해양대 교수는 “시추를 통해 자료를 얻었다고 하지만 특정 위치에 한 곳에서만 취득한 자료다. 이를 통해 다른 유망구조에 대해 어느 정도 예측해 볼 수는 있겠지만, 석유나 천연가스의 부존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은 여전히 시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반드시 액트지오였어야 했나

전문가들은 액트지오의 빅토르 아브레우 고문에 대해선 “전문가가 틀림없다”고 했다. 박근필 명예연구원은 “미국 휴스턴 지역에는 액트지오처럼 작은 회사들이 많다. 그 자체로 논란으로 삼을 순 없다. 아브레우 고문은 미국퇴적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실제 자문 경험도 많다. 업계에서도 인정하는 전문가가 맞다”고 했다.
그러나 반드시 액트지오였어야 했는지에 대해선 의문과 아쉬움을 남겼다. 익명을 원한 지질학과 교수 “당시 입찰에 참여한 업체 가운데에는 업계 빅3라고 불리는 슐럼버거도 있었다. 아브레우 고문이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장비나 기술 측면에선 규모가 큰 회사가 당연히 더 뛰어나기 때문에 기업 선정에 아쉬움이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결국엔 비용 문제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긴 여정의 한 과정”

다만 이번 사업의 경우 심해라는 점에서 동해 가스전과는 차이가 있다. 대왕고래 유망구조의 정확한 위치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동해 8광구와 6-1광구 북쪽 부근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이 지역을 영일만 인근이라고 발표했으나 실제로는 심해에 가깝다. 동해 가스전이 수심 60m에 있었다면 이 지역 깊이는 1100~1200m에 달한다. 고압과 저온의 심해 환경을 견딜 수 있는 비싼 장비와 높은 기술력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학계에선 기술력 확보와 경험 축적 면에서라도 해당 사업이 가치 있다고 본다. 탐사를 통해 확보한 기술과 노하우가 향후 다른 심해 석유·가스 자원개발 프로젝트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데 중요한 자산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이정환 전남대 교수는 “석유 업계에는 ‘실패해도 실패한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큰 회사가 개발에 실패하고 떠난 개발권을 작은 회사가 사들여 가스와 석유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임종세 해양대 교수는 “유한한 인간 지식과 제한된 정보만으론 넓고 깊은 바닷속을 정확히 알기가 쉽지 않다. 앞서 우리나라를 산유국으로 만든 동해-1 가스전 생산까지의 오랜 과정처럼 이번 동해 심해에서도 석유·가스를 찾아 개발·생산하기까지 긴 여정이 펼쳐질 것이다. 이번 탐사 시추는 그 여정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