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인데 ‘밀키 바닐라 엔젤’ 애칭은 당황스러워…한지민은 엄청나게 듬직한 사람”
2023년 영화 ‘범죄도시3’ 인터뷰 자리에서 기자와 만났던 배우 이준혁(41)은 “왜 멜로, 로코 장르에서 종종 볼 수 없는지”라는 질문에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되물었었다. 로맨스 작품을 공장처럼 뽑아낼 수 있을 얼굴과 태도를 갖추고도 대중들의 요구를 영원히 공감 못 할 것처럼 보였던 그의 이 ‘반문’에 대한 대답은 2년이 지난 현재 그의 작품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이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이준혁 표 로맨스 ‘나의 완벽한 비서’의 이야기다.

2월 14일 종영한 SBS 금토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나완비)는 잘나가는 헤드헌터 회사 CEO지만 일 말고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강지윤(한지민 분) 앞에 완벽함으로 무장한 유은호가 비서로 나타나면서 서로가 서로를 성장시키는 이야기를 그렸다. 극 중 이준혁이 연기한 유은호는 외모부터 매너, 배려까지 모두 갖췄지만 스스로를 빛내는 것보다 사랑하는 여자의 뒤를 받쳐줄 수 있는 든든한 성품마저 지닌 완벽한 남자다.
한편으론 강지윤과 함께 극을 이끌어가는 주연이면서도 동시에 적지않은 신에서 조연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배경처럼 존재해야 한다는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준혁은 유은호를 연기하면서 바로 이 지점에 조금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로맨스 연기는 배우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고 하지만, 로맨스에 어울리는 외양을 갖추는 것은 아무래도 ‘선천적인’ 기반이 없으면 대중들을 설득시키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이준혁은 남들보다 시작 지점이 앞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다. 외모 이야기만 나오면 “전혀 아닌데”라며 거북이처럼 수그러들던 그는 이번 ‘나완비’ 시청자들이 쏟아낸 호평에도 “매스미디어가 아직 국민들을 세뇌할 수 있구나라는 긍정적인 느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라며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범죄도시3’ 악역이나 ‘비밀의 숲’의 서동재 같은 캐릭터를 연기할 땐 카메라가 저의 (캐릭터 적으로) 이상한 부분을 찾으려 할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은호를 연기할 땐 저의 장점을 잡으려고, 어떻게 해서든 좋은 점을 보여주려고 많은 노력을 해주셨어요. 그러니 영상도 원래보다 더 ‘뽀샤시’하게 나오는 거죠(웃음). 제가 원래도 밖에 잘 안 돌아다니는데 이번 ‘나완비’ 종영 이후엔 더 큰일났다, 이제 어떡하나 싶어요(웃음). 이 인터뷰를 계기로 평소에 저를 직접 만나서 보시고 실망하셨더라도 그냥 ‘작품에서 (얼굴)연기를 잘했나 보다’라고 봐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현장에서 (한)지민 씨를 처음 만나서 느낀 건 굉장히 프로페셔널한 사람이라는 거였어요. 드라마나 영화 현장은 늘 위험한 일도 많고, 사소한 사건들이 많이 발생하는데 거기서 버팀목이 되는 정말 듬직한 선배이자 동료예요. 거기다 아름다움까지 갖췄으니 금상첨화죠(웃음). 지민 씨의 가장 기억에 남는 연기는 4화에서 자다가 은호를 보고 ‘잘생겼다’라고 하는 대사였어요. 저는 대본 리딩 때 ‘이 대사가, 이게 말이 되나요?’ 하고 걱정했는데, 직접 그분의 연기를 보니까 설득이 되더라고요(웃음).”
동경해 온 상대와 함께 멜로 연기라는 큰 도전이자 숙제를 성공적으로 마친 데서 오는 안도감에는 그를 향해 꾸준한 사랑을 보여 온 팬들을 향한 고마움도 섞여 있을 터였다. 방송 기간 동안 소속사 직원을 포함해 주변으로부터 각양각색의 ‘팬 주접’을 전해 들었다는 이준혁은 또 한 번 쑥스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르다가도, 팬이 붙여준 특별한 애칭 이야기가 나오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다. 유독 하얀 피부 탓에 붙은 ‘밀키 바닐라 엔젤’이란 애칭을 붙여준 팬을 향해 “도대체가, 진짜 팬 맞냐”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흥행 보증 수표로 우뚝 솟은 ‘이준혁 표 로맨스’에 푹 빠진 대중들에겐 조금 아쉬운 소식이지만, 이준혁의 차기작리스트에는 다시 그의 취향에 맞는 ‘독특한’ 작품들이 채워졌다. 먼저 스릴러, 범죄 장르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레이디 두아’의 촬영이 한창 진행 중이고, 이를 뒤이어 tvN 오피스물 드라마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도 제작을 기다리고 있다. 특정한 장르, 하나의 캐릭터의 성공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마음이 가는 작품엔 전부 도전하고 싶다는 이준혁의 욕심 아닌 욕심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정말 가리지 않는 편이에요. 어떤 작품을 보든 다 애착을 가지거든요. 반대로 제가 작품에 뛰어들 때도 누군가는 저처럼 긍정적으로 봐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돼요. 그래서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도 겁이 없는 거고요. 누군가에게 ‘저렇게 많이 실패해도 열심히 일하며 버티는 선배가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모델이 되면 좋겠다고도 생각해요(웃음). 저만 가지고 있는 판타지가 있는데,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면서 다 다른 사람이 연기했다고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결국에 저는 없어지고, 그 캐릭터만 남아서 사람들이 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게 제가 가장 바라는 상태예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