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복으로 17일이나 지연…중대범죄신상공개법 도입 이후 이의제기·가처분 신청·행정소송 사례 급증
‘목사’ 김녹완이 만든 자경단은 경찰이 파악한 피해자만 234명이나 될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양산했다. 특히 피해자 234명 가운데 159명이 10대다. 조주빈이 주도한 ‘박사방 사건’(피해자 73명, 미성년자 피해자 16명)보다 피해자 규모가 3배 이상이며 미성년자 피해자 규모는 10배 이상이다.
또한 피해자들에게 1시간 간격으로 ‘일상 보고’를 제출받는 등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피해자들을 심리적으로 지배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주기도 했다. 김녹완의 신상정보가 공개되기 3일 전인 2월 5일에 한 여성 피해자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증언한 김녹완의 피해자 착취 행위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2023년 1월부터 2년 동안 피해를 입었다는 여성은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김녹완이 어떻게 피해자들을 성착취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우선 나체로 인사하는 사진과 영상을 찍어서 보내게 했으며 학교 개학 전에는 하루 종일 김녹완이 준 성인용품을 쓰게 했다고 한다.
또한 성교육을 시켜주겠다며 다른 사람의 성관계 영상을 한 10개씩 묶어서 보내 감상문을 써오라고 시키기도 했다. 성착취 대화방에서 벗어나는, 소위 ‘졸업’을 하려면 성관계를 가져야 했는데 만족스러워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10점 만점에 8점 정도 받아야 졸업을 시키고 만족스럽지 않아 점수가 낮으면 추가 성관계를 요구받았다고 한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가 언론 브리핑을 열어 1월 15일 김녹완을 경기 성남시 소재의 주거지에서 검거했다고 발표한 것은 1월 23일이다. 그런데 서울경찰청은 하루 앞선 1월 22일 김녹완에 대한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를 열어 이미 신상정보 공개를 결정했다. 언론 브리핑에서 신상정보까지 공개될 수도 있었지만 실제 공개는 2월 8일 오전 9시에야 이뤄졌다.
이는 김녹완의 불복 때문이다. 1월 22일 신상정보 공개가 결정되자 유예기간을 달라며 이의 제기를 한 김녹완은 23일에 바로 신상정보 공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과 신상정보 공개 처분 취소 청구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2월 6일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부장판사 이주영)는 신상정보 공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김녹완은 7일 항고장을 제출했지만 더 이상 신상정보 공개를 정지시키진 못했다. ‘집행정지’를 규정한 행정소송법 제23조 5항이 ‘즉시항고에는 결정의 집행을 정지하는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경찰이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를 열어 신상정보 공개를 결정하며 바로 공개가 이뤄졌다. 대개 오후 2시에 심의가 시작돼 공개가 결정되면 오후 4~5시 무렵에 바로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당시에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 2에 따른 특정강력범죄 피의자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5조에 따른 성폭력범죄 피의자의 신상정보만 공개됐다. 이후 기존 피의자 신상공개 제도를 보완·강화할 목적으로 ‘특정중대범죄 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중대범죄신상공개법)’이 신설돼 2024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중대범죄신상공개법 도입 과정에서 가장 화제가 된 부분은 신상정보 공개 피의자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수사기관의 머그샷 촬영 및 공개가 가능해진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머그샷 공개법’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와 동시에 신상공개 대상자의 인권 보호와 방어권 보장을 위한 절차도 도입됐는데 피의자 의견 청취 절차, 신상정보 공개 전 5일의 유예기간 도입, 불송치·불기소·무죄 확정 시 별도의 형사보상 등이다.
중대범죄신상공개법 제4조 7항은 ‘피의자에게 신상정보 공개를 통지한 날부터 5일 이상의 유예기간을 두고 신상정보를 공개하여야 한다. 다만, 피의자가 신상정보 공개 결정에 대하여 서면으로 이의 없음을 표시한 때에는 유예기간을 두지 아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신상정보 공개가 결정되면 수사기관은 그 사실을 피의자에게 통지하며 행정심판법과 행정소송법에 따라 불복할 수 있음을 공지한다. 또한 ‘신상정보 공개 결정 확인서’에 서명 과정에서 이의를 제기하면 법이 보장한 5일 이상의 유예기간을 갖고, 이의 제기 없이 서명하면 바로 신상정보가 공개가 된다.
중대범죄신상공개법 시행 이후 최초의 신상 공개 피의자인 김레아부터 바로 이의를 제기했다. 지난해 4월 5일 수원지검은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를 열어 김레아의 신상정보 공개를 결정했지만 김레아가 이의를 제기해 유예기간이 주어졌다. 그리고 유예기간 도중인 9일 김레아는 신상정보 공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과 신상정보 공개 처분 취소 청구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이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4월 22일에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화천군 북한강 토막 살인 사건’ 피의자 양광준은 지난해 11월 7일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를 통해 신상정보 공개가 결정됐지만 이의를 제기해 5일의 유예기간이 주어졌다. 바로 다음 날 양광준은 신상정보 공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과 신상정보 공개 처분 취소 청구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이 바로 기각하면서 13일에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앞으로 이의 제기로 유예기간을 확보한 뒤 신상정보 공개에 불복하는 법적 절차에 돌입하는 사례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다만 신상공개 대상자의 인권 보호와 방어권 보장도 중요하지만 피해자들을 위한 정의가 더 절실하다는 주장도 상당해 관련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김녹완의 신상공개가 공개되기 며칠 전, 아직 ‘목사 A 씨’로 소개되던 당시 채널A와 인터뷰를 가진 피해자는 “꿈에는 진짜 자주 나오고, 그냥 뭔가 아직도 연락을 보내야 될 것 같고, 누가 갑자기 연락이 오면 그 사람인가 싶어서 무섭고”라고 절절한 심경을 밝혔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