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빵한’ 로버트 패틴슨부터 ‘악랄한’ 마크 러팔로까지…봉테일이 꺼내든 새로운 얼굴들

'미키 17'는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익스펜더블) 역할로 지원해 죽을 때마다 다시 프린트되는 복제인간 미키(로버트 패틴슨 분)가 17번째 죽음의 위기 속에서 살아 돌아 왔지만, 그가 죽은 줄 알고 본부에서 18번째 미키를 프린트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이야기를 그린 SF 영화다.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에드워드 애쉬턴의 SF 소설 '미키 7'을 원작으로 한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은 "복제인간은 많은 SF 장르에서 다룬 소재이지만, 이 원작은 다소 다르다. 휴먼 프린팅이라고 여러 유기물을 이용해 사무실에서 서류를 출력하듯이 사람을 출력한다"라며 "(사람과 출력이라는) 함께 있어선 안 되는 단어가 조합된 '휴먼 프린팅'이란 자체에 희비극이 조합돼 있다. 인간을 출력해서는 안 되지 않나. 그 자체에 인간 드라마가 내포돼 있어 기존의 복제인간물과는 다를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고 작품을 소개했다.

'미키 17'에선 국내 대중들에게 익숙한 배우들의 전혀 예상치 못한 낯설고 새로운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순진하고 얼빵한 로버트 패틴슨도 그렇지만, 데뷔 이래 첫 악역을 맡아 참으로 다채로운 방식으로 역겨운 모습을 보여준 마크 러팔로도 시사회 공개 후 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마크 러팔로는 '미키 17'에서 자신의 보신에 급급한 얼음행성 개척단의 독재자, 마셜을 연기했다.
이처럼 배우들의 새로운 얼굴에 조명을 비추게 된 계기에 대해 봉 감독은 "성격이 이상하다 보니까 사람을 볼 때도 이상한 데만 보게 되는가 보다. 어느 한 구석에 흔히 알려진 모습과 다른 모습이 보이면 거기에 집착이 생긴다"라며 "마크 러팔로가 한 번도 악역을 하지 않았단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는데 그 첫 번째 기회가 저한테 왔다는 게 신나고 영광스러웠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드렸더니 낯설어 하시면서 '왜 나에게, 내가 뭘 잘못했어'(하시더라)"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 '미키 17' 내한 행사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 이후 10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마크 러팔로도 "'미키 17'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내게 들어온 게 맞나 싶어서 주의 깊게 대본을 봤다"라며 "스스로 나를 의심하고 있을 때 이런 역을 믿고 맡겨준 봉준호 감독에게 감사하다"며 연기 변신의 공을 돌렸다.
마크 러팔로가 연기한 독재자 마셜은 그 모델이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해외 시사회에서 먼저 영화를 접한 외국 관객들은 "우리나라의 독재자를 모델로 한 것 같다"며 저마다 떠오르는 자국의 모델을 하나씩 언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의 캐릭터에서 여럿을 연상할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이면서 다양한 얼굴을 더해냈다는 이야기가 된다.

'미키 17'은 봉준호 감독이 기존에 선보인 적 없는 '로맨스'를 그려낸 작품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그 첫 영광(?)의 주역이 미키와 그의 동료이자 연인인 나샤다. 얼음행성 개척본부 소속의 뛰어난 정예요원이기도 한 나샤를 연기한 나오미 애키는 "비밀이 있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캐릭터들이 많지만 나샤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내보이는 진정성 있고, 진실한 사람"이라며 "그래서 대본을 읽으며 현실화하는 작업이 신났다. 나샤는 저를 자유롭게 했던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옥자'(2017)에 이어 두 번째로 봉준호 감독과 함께 한 스티븐 연은 미키의 유일한 친구이면서도 그런 친구에게까지 뒤통수를 치려 드는 타고난 사기꾼 티모를 연기했다. 스티븐 연은 "대본을 보면 모두가 티모를 싫어한다. 이제까지 타인의 시각을 무시하면서 살아오지 못해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티모를 이해해 보려고 했다"라며 "어떤 연기도 만족할 순 없겠지만, 만족하는 부분이 있다면 봉 감독님 작품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영화를 관람하고, 다양한 시각을 담은 해석을 나눌 것을 바란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봉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땐 모든 인물의 사소한 것들이 쌓이고 쌓여 영화가 된다. '미키 17'도 마찬가지로 미키가 프린트 되는 자기 몸을 봤을 때 어떤 느낌일지, 유일한 친구가 자기 앞에서 깐족거리며 괴롭힐 때 속마음은 어떨지 등 힘든 상황 속 그런 틈바구니에서 숨쉬는 인간들의 다양한 감정을 같이 느끼고 나눠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미키 17'을 보며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참 기뻤다. 연약한 청년이 힘든 상황 속에서 파괴되지 않았다는 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며 "영화에는 스펙타클한 장면도 있지만 배우들의 풍부하고 섬세한 연기들을 큰 스크린으로 봤을 때 그 자체가 스펙타클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극장에서 안 보시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37분, 15세 이상 관람가. 2월 28일 개봉.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