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말 바꾸기에 특정 정당 회유설까지…야전과 첩보부대 사령관 스탠스 차이 눈길

군 피라미드 지휘 구조 꼭대기에 있는 핵심 인사들이 12·3 비상계엄 사태에 연루됐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박안수 전 육군 참모총장(육사 46기)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육사 47기)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육사 48기)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육사 48기)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육사 50기) 등이다.
윤석열 대통령 측근으로 사실상 계엄을 주도한 것으로 파악되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2월 13일 김 전 장관은 국가인권위원회에 곽종근 여인형 이진우 문상호 등 사령관급 부하 4명에 대한 긴급구제 권고 신청을 제기하기도 했다. 2월 19일 국가인권위는 김 전 장관이 신청한 긴급구제 권고 안건을 각하했다.

국가인권위는 서울고등법원, 중앙지역군사법원, 국방부 검찰단 등에 대해 접견제한, 서류 및 물건 수수 금지 해제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냈다. 아울러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에겐 계엄 사태에 연루된 5인을 국회나 군 교정시설 밖 장소로 호송할 때 수갑이나 포승 등 보호장비를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군 소식통은 “김 전 장관이 초지일관으로 본인에 대한 책임론을 부각하며 ‘부하 챙기기’에 공을 들이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계엄 키맨들로 부각된 장성급 인사들이 자신의 부하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자칫 와해될 수 있는 결속력을 재점검하는 차원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먼저 야전부대 출신 장군들의 경우 자신의 책임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과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 이야기다. 곽 전 사령관과 이 전 사령관은 계엄이 해제된 직후부터 발빠르게 움직였다.
곽 전 사령관은 2024년 12월 6일 김병주 민주당 의원이 ‘항의 방문’ 형식을 띠고 부대를 방문하자, 그를 만났다. 김 의원 유튜브 인터뷰에 응했다. 같은 날 김 의원은 이 전 사령관 부대를 방문했고, 이 전 사령관도 김 의원 인터뷰에 응했다. 비상계엄 사태 관련 공익제보 및 양심고백 성격 인터뷰에 군 내부 반응도 들끓었다는 후문이다.

이 소식통은 “사령관급 인사들이 일선 부하들보다도 매뉴얼에 둔감한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해 사기가 저하된 측면이 없지 않다”면서 “결국 라이브 방송에 응한 것이 계엄은 본인들 의사와 무관하고, 본인들 역시 피해자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차원 아니었느냐”고 반문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곽 전 사령관과 이 전 사령관 캐릭터도 구별된다는 분석이다. 국회 내란특위, 탄핵심판의 증인 등으로 출석했을 때 둘의 스탠스는 달랐다. 이 전 사령관은 형사재판 기소를 근거로 핵심적인 사안에 대한 증언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곽 전 사령관은 국회 증인 및 탄핵심판 증인으로 출석해 적극적인 소명을 이어갔다.
윤 대통령이 끌어내라고 했던 대상이 요원인지 의원인지에 대해 곽 전 사령관은 ‘의원’이라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피력했다. 옥중노트를 통해선 ‘국군 여러 부대가 윤석열 개인에게 이용만 당하고 버려졌다’는 분노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군 안팎에선 곽 전 사령관이 확연한 ‘반윤 스탠스’를 통해 마지막 살길을 모색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2월 17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한 김 단장은 “나와 곽종근 전 사령관이 민주당에 이용당했다”면서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명령이나 국회 단수·단전 명령은 대통령이 내린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2월 19일 SBS 보도를 통해 김 단장 텔레그램 대화방 내용이 공개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김 단장이 계엄 당일 “진입 시도 의원 있을 듯”이라면서 “문 차단 우선”이라는 지시를 하달한 정황이 포착된 까닭이다. 2월 6일 탄핵심판 증인으로 출석했던 김 단장은 “의원들을 막은 게 아니라, 국회를 봉쇄하라는 지시만 받았다”고 증언한 바 있다. 김 단장 발언을 둘러싼 신뢰성에도 물음표가 붙게 됐다.
군법무관 출신 법조계 관계자는 “민주당이 곽 전 사령관을 회유했다는 의혹과 김 단장이 헌재에서 위증을 했다는 의혹은 독립적인 사안”이라면서도 “곽 전 사령관과 김 단장 모두 오락가락 발언을 통해 메신저로서 신뢰성을 잃어갈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바라봤다.
전직 군 고위 관계자는 “곽 전 사령관은 엑셀을 계속 밟고 있고, 이 전 사령관은 브레이크를 밟은 형국”이라면서 “곽 전 사령관은 소명을 위해 적극적인 입장 표명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는 군 내부 정서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그런 과정에서 정치권으로부터 회유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면서 “곽 전 사령관이 군인으로서 명예보다는 개인적인 생존에 급급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여인형 전 사령관은 보병 병과로 야전에서 작전통으로 분류되다가 윤석열 정부에서 방첩사령관이 된 케이스다. 문상호 전 사령관은 정보 병과로 ‘정보통’ 길을 걷다가 정보사령관이 됐다. 앞뒤 사정은 다르지만 첩보부대 사령관인 만큼 비상계엄 진상조사 국면에서도 보안 유지 부분에 상당한 신경을 쓰는 것으로 비춰진다.”
그는 “그들이 공식석상에서 발언을 최소화하는 것은 군인다운 모습에 좀 더 가깝다”라면서도 “하지만 여 전 사령관이 ‘충암파’로 분류된다든지, 문 전 사령관이 ‘노상원 라인’을 잡았다든지 사례를 보면, 무대가 음지일 뿐 그들의 활발한 정치적 행보가 큰 후폭풍을 불러온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적 이슈에 군 수뇌부가 줄줄이 연루되면서, 현직 군 간부들 사기가 저하됐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군 관계자는 “TV를 보면 장군들보다 영관급 장교들이 훨씬 군인답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면서 “장군 진급엔 실력보다 정치가 중요하다는 말을 줄곧 들어왔는데, 그 이유가 왜인지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아 씁쓸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