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게 미국은 사실상 최대 수출국, 관세 여파 적잖아…상호관세 우려 속 변수는 미국 내 여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월 13일(현지시각) 상호관세 부과를 공식화했다. 단순 관세율 외에도 비관세 장벽인 규제, 부가가치세, 정부 보조금, 환율정책 등까지 고려해 관세를 정하는 내용이다.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나라도 비관세 장벽을 이유로 상호관세가 부과될 수 있다.
상호관세 부과 시기는 4월 초로 정해졌다. 다소 늦춰진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각국별 상황을 파악하고 관세율을 정하는데 시간을 갖겠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상무장관과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국가별로 권고안을 담은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제출할 계획이다. 무역적자가 가장 많고 문제가 가장 심각한 국가들이 첫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국가별 무역 적자(2024년 기준)를 보면 중국, 멕시코, 베트남, 아일랜드, 독일, 대만, 일본, 한국, 캐나다, 인도 순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 지난 2월 13일까지 미국 증시 상승률은 S&P500 2.9%, 나스닥 1.76%, 다우존스 4.29%다. 미국을 상대로 무역흑자를 거두는 나라 중 가장 먼저 관세 폭탄을 맞은 캐나다와 멕시코 증시 상승률이 3.38%, 9.19%로 더 높다.
가장 치열한 관세 전쟁이 예상되는 유럽(유로스톡, 독일DAX30)은 무려 10% 이상 올랐다. 코스피와 코스닥도 7.65%, 10.48% 오르며 양호한 흐름이다. 미국 보다 못한 곳은 인도(-2.52%), 일본(-1.09%), 중국(상해종합·-0.58%), 대만(1.11%), 베트남(0.01%) 정도다. 시장이 관세 전쟁 가능성을 낮게 본 결과다.
시장은 일찌감치 트럼프 행정부가 일괄적인 보편관세 대신 선택적 상호관세로 기울 것을 예상했다. 자동차와 철강은 일단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도 타격이 크다. 미국의 산업계는 수입 철강 의존도가 높다. 미국내 철강 생산이 단기간에 획기적으로 늘지 않는 한 고율의 관세 부과는 미국 산업계에 상당한 부담이다.
자동차 역시 마찬가지다. 자동차 산업은 여전히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지금까지 멕시코와 중국 등 해외공급망에 의존했는데 관세로 조달 비용이 높아지면 미국산 차의 가격 경쟁력은 더 약화될 수밖에 없다. 반도체 역시 계획된 미국 공장이 완공될 때까지는 수입이 불가피하다. 관세로 값이 높아지면 미국 업체들의 부담이 커진다.
그러면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도 제한적일까. 올해 한국 증시의 흐름만 보면 그런 듯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 중국과 대만, 베트남 증시의 부진은 그 반증이다. 2024년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은 1279억 달러로 중국(1330억 달러)에 이어 2위다. 3위가 베트남(583억 달러)이다. 중국과 베트남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되는 제품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최대 시장이다.
중국과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관세 정책은 우리 기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두 나라는 곧 발효될 상호관세의 주요 부과대상이다. 두 나라의 대미 관세 부담이 커지면 우리나라의 대중, 대베트남 수출까지 타격을 입게 되는 구조다.
미국이 우리나라의 비관세 장벽을 어디까지로 볼지도 변수다. 매년 발간하는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의 지난해 3월 판을 보면 한국의 자동차 배출 관련 인증 절차, 약가 정책 등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 최근 우리 정부와 국회에서 추진해온 온라인 플랫폼 기업 독과점 규제도 문제 삼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미 FTA 개정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주한미군 방위비 문제는 형식적으로는 별개 문제이지만 양국 협상 시 비대칭전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업체별 상황을 봐도 안심은 어렵다.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 내 현지 공장을 가지고 있지만 필요한 부품 상당수를 한국에서 수입한다. 계열사인 현대제철이 미국 공장 설립 계획을 밝혔지만 실제 건설과 가동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한국의 철강업체들은 수입량 제한을 받아들이면서 관세 폭탄을 피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전쟁이 가져올 간접적 영향도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는 유독 치명적일 수 있다. 관세로 물가가 상승하고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가 지연되면 미국의 소비 위축 우려가 커진다. 수요가 줄면 한국 수출기업들의 실적도 둔화된다.
변수는 미국 내 여론이다. 관세로 원자재나 부품 값이 비싸지면 미국 제조업의 타격이 크다. 반이민 정책으로 미국 농가들은 심각한 노동력 부족을 우려하게 됐다. 농업 생산 부진은 또 다른 인플레이션 요소다. 트럼프 취임 첫 달인 지난 1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0.5% 상승했다. 시장 예상치 0.3% 웃도는 것은 물론 2023년 8월의 이후 최대치다. 조류인플루엔자 유행에 따른 계란 값 상승 때문이다.
내년 말 미국은 하원 전부와 상원 3분의 1을 바꾸는 이른바 ‘중간선거’를 치른다. 미국에서 대통령 임기 4년 내내 여당이 상·하원을 장악한 사례는 루스벨트(1933~1945년)와 린든 존슨(1963~1969년) 대통령 이후 없었다. 지난 해 11월 선거에서 공화당은 대통령뿐 아니라 상·하원까지 모두 장악했다. 내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상·하원 어느 한쪽이라도 과반을 잃는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임기 후반부에 민주당의 거센 견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