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조기 대선 가시화 상황 김경수 등 릴레이 회동…‘비명’ 공격하는 강성 팬덤 당 통합 걸림돌 우려도

친명계와 비명계 간 갈등은 그 뿌리가 깊다. 2017년 대선 때 성남시장이던 이재명 대표가 대선 출사표를 던졌다. 이 대표를 지지하는 ‘손가락혁명군’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문빠’가 충돌했다. 이들은 서로를 공격했고, 문자 폭탄을 날리며 서로 각을 세웠다.
2018년 지방선거 때 내홍은 폭발했다. 이재명 대표는 경기도지사 경선에서 친문계 좌장 전해철 전 의원과 붙었다. 전 전 의원 측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글을 올리던 트위터(지금의 X) 계정 ‘혜경궁 김씨’가 이 대표 부인인 김혜경 씨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대표 측은 금기를 깼다며 불쾌해 했다. 경선은 이 대표가 승리했지만 감정의 골은 패였다.
20대 대선 경선에서 양측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모습을 보였다. 이낙연 전 총리 캠프 측은 이 대표의 ‘형수 욕설’ 사건을 수면 위로 올렸다. 이 전 총리 측의 남평오 전 국무총리 민정실장은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언론에 제보했다. 대장동 개발 관련 의혹은 이 대표를 괴롭히고 있는 사법리스크로 남아 있다. 경선은 이 대표가 승리했다. 대선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패했지만, 친명계는 당 주류로 부상했다.
비주류로 전락한 친문계는 이 대표에 대한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2023년 9월 21일 이재명 대표에 대한 2차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최소 29명의 민주당 의원이 가결표를 던졌다. 이 대표 지지자들은 가결표를 던진 것으로 추정되는 의원들을 색출하기도 했다.
친문계를 비롯한 비명계 인사들 중 상당수는 22대 총선 때 공천을 받지 못했다. 세력이 축소된 비명계는 민주당이 ‘이재명 일극체제’ 때문에 망하는 길을 걷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관련기사 6년 전 루비콘강 건넜다…민주당 덮친 ‘친명 vs 친문’ 갈등의 기원).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친명계와 비명계의 신경전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1월 29일 김경수 전 지사는 “일극체제, 정당 사유화라는 아픈 이름을 버릴 수 있도록 당내 정치 문화를 지금부터라도 바꿔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를 정조준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자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김 전 지사의 글을 읽어봤는데 어떤 사안을 지적하는 건지 정확히 딱 짚어서 감을 잡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반박했다.

유 작가는 2월 5일 유튜브 방송 ‘매불쇼’에서 “내란 세력의 준동을 철저히, 끝까지 제압해야 하는 비상시국”이라며 “게임의 구조가 지난 총선 때보다도 극화된 상황에서, 훈장질하듯이 ‘이재명 네가 못나서 대선에서 진 거야’ ‘너 혼자 하면 잘될 거 같으냐’는 소리를 하면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명계 대권 잠룡들을 향해서는 ‘이재명에게 협조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비명계는 발끈했다. 2월 7일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망하는 길로 가고 있는 민주당 모습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됐다”며 “(이재명 대표에 대해) 비판의 말을 하기만 하면 ‘수박’이라는 멸시와 조롱을 하는 현상이 끊이지 않고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비명계 대권 잠룡들도 일제히 이재명 일극 체제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2월 9일 친문계 핵심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난 대선 때도 빨간불이 깜박이는데 앞만 보고 갔다”며 “당내 역량을 통합하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밀어내기 바빴다”고 적었다. 임 전 실장은 “저는 서울시당과 광주시당으로부터 지원 유세를 요청받았고 흔쾌히 동의했으나 대선 캠프에서 필요 없다 해 현장에 나서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의 계파 갈등 봉합 실패가 20대 대선 패배의 원인이라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아직 불씨는 살아있다
2월 7일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한겨레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 탄생에 문재인 정부 사람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물론 그중 내가 제일 큰 책임이 있다”며 “이런 사람에게 정권을 넘겨줬다는 자괴감이 아주 컸다. 게다가 이번에 계엄, 탄핵 사태가 생기니까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로 국민께 송구스러웠다”고 말했다. 대선 패배 책임론을 둘러싼 계파 갈등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문 전 대통령 인터뷰는 2월 10일 보도됐다.
2월 11일 이재명 대표는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민주 조직’이 아니고 ‘민주당’이다. 다양성이 죽으면 당이 아니다”며 “(비명계가) 당연히 불만이 있을 것이고, 당연히 말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대선 패배는) 제일 큰 책임은 제게 있다. 준비 부족, 자질 부족, 과거 이력에서도 흠잡을 데가 있는 것”이라며 “그 책임을 부정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비명계를 향해서는 “우리가 이길 수만 있다면 다 줄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내부의 불만 목소리를 나름 줄여보려고 노력했지만 부족했다”며 “그분들에게도 가능한 역할을 만들어드리고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계파 수장들이 나란히 당 갈등을 조기에 수습하려는 행보를 보인 셈이다.
2월 13일 이 대표는 김경수 전 지사와 회동했다. 이 대표는 “헌정 수호와 내란 극복에 동의하는 세력이 힘을 합칠 필요가 있다”며 가칭 ‘헌정수호대연대’를 제안했다. 김 전 지사는 이에 동의하면서 당내 다양성 확보와 팬덤 정치 극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공개 회동에서도 헌정 수호·민주주의 수호 연대의 폭은 최대한 확장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는 주요 정책에 대해서는 민주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김 전 지사의 의견도 수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견해차를 보인 대목도 있었다. 김 전 지사는 ‘지난 대선과 총선 과정에서 치욕스러워하며 당을 떠나신 분들에 사과하고 이들이 돌아올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불법 계엄을 사전에 차단하는 원포인트 개헌을 먼저 하고 권력구조 등을 개혁하는 개헌을 하자는 ‘2단계 개헌’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 대표는 두 가지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개헌에 대해서는 ‘내란 극복이 먼저’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확전은 막았지만 불씨는 살아있다는 평이다. 고민정 의원은 2월 14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지도자들 간에 통합의 메시지들을 계속 내고 있어서 어쨌든 물꼬는 트였다”고 했다. 다만 고 의원은 이 대표의 팬덤이 통합 행보를 거스른다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전직 민주당 의원도 “아직은 (이 대표의) 진정성을 잘 못 느끼겠다는 그런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단순히 김 전 지사 만나서 식사 한번 하고 통합하자 이야기한다고 해서 똘똘 뭉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김 전 지사에 이어 김부겸 전 총리와 임종석 전 실장을 만날 예정이다.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김두관 전 의원과의 회동 일정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