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코드 ‘가정폭력’ 변경 없이 단순 ‘시비’로 종결…대법원 “피해자 안전 확보 조치 소홀…성실의무 위반”

경기 고양의 한 파출소에서 경위로 근무하던 A 씨는 2021년 8월 14일 "동거남과 시비가 있다"는 피해자 B 씨의 신고를 접수하고 총 3차례 현장에 출동했다. 해당 가정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 동안 ‘가정폭력 재발우려가정’으로 지정됐다 해제된 고위험 가정이었다.
이날 오전 4시 30분쯤 처음 현장에 도착한 A 씨는 B 씨의 동거남 C 씨에게 "B 씨를 때린 적 있냐"고 물었고, C 씨는 "안 때렸다. 아픈 사람을 어떻게 때리냐"며 폭행 사실을 부인했다. 당시 C 씨는 술에 취한 상태였다. 이 자리에서 A 씨는 B 씨에게도 폭행 당했냐고 물었지만 B 씨는 대답하지 않은 채 손짓으로 C 씨를 내보내 달라고만 요청했다. A 씨는 C 씨를 밖으로 내보내며 "술을 깨고 들어가라"고 말한 뒤 복귀했다.
이후 오전 6시쯤 B 씨로부터 "동거남이 다시왔다"는 내용의 신고가 파출소에 접수됐고, A 씨는 두 차례 현장에 추가로 출동해 B 씨에게 구두로만 주의를 줬다. 주거지에서 기물 파손 등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 A 씨는 사건을 종결 처리하면서 '시비'로 입력된 사건종별 코드를 유지했다. 또 '가정폭력 대응 매뉴얼'에 따라 관계자 진술과 별도로 작성해야 하는 '가정폭력 위험성 조사표'를 작성하지 않았다.
A 씨가 속한 순찰1팀은 오전 7시 20분쯤 순찰2팀과 근무교대를 했고, 순찰2팀 경찰관들은 오전 8시까지 B 씨의 거듭된 신고전화를 받고 출동했지만 "소란행위를 계속하면 경범죄로 범칙금 고지서를 발부하겠다"고 고지한 뒤 복귀했다. B 씨는 이날 총 14차례 신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앙심을 품은 C 씨는 오전 8시 54분쯤 B 씨 주거지 안방 창문의 방범 철조망을 뜯어내고 들어가 B 씨를 수차례 폭행했고, B 씨는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A 씨는 직무 태만을 이유로 견책 징계를 받았고, 이후 소청심사를 청구해 불문경고로 바뀌었다. 불문경고는 법률상 징계 처분은 아니지만 표창 대상자 제외 등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행정처분에 해당한다. A 씨는 불문경고 처분도 부당하다며 경기북부경찰청장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1심 재판부는 "원고가 당시 상황에서 고려될 수 있는 여러 조치들을 강구했음으로 직무를 태만히 수행했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원고가 경찰 지침을 위반해 현장출동 당시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에 만전을 기할 의무를 소홀히 한 잘못이 있어 징계사유가 인정된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 역시 "피해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강구하는 데에도 소홀했고, 112시스템상 사건종별 코드를 ‘가정폭력’으로 변경하지 않아 순찰2팀으로 하여금 적절한 후속조치를 취할 기회를 놓치게 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신고접수 당시 사건종별 코드가 ‘가정폭력’으로 분류되었거나 신고내용의 실질이 가정폭력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는 사건에 관한 지령을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위와 같은 일련의 조치를 충실히 하지 아니한 경우 경찰관으로서의 직무를 태만히 한 것"이라면서 "국가공무원법 제56조에서 정한 성실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해 상고를 기각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