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서에 검찰 이력 쏙 빼, 중도 확장? 파괴력 글쎄…반윤 부각될수록 핵심 지지층과 거리 ‘딜레마’

한동훈 전 대표는 2월 26일 ‘한동훈의 선택-국민이 먼저입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공개하며 정치 행보를 재개한다. 한 전 대표는 책 출간에 맞춰 북콘서트 또는 강연 등의 릴레이 행사를 통해 정치 복귀를 공식 선언할 것으로 전해진다. 겉은 정치 재개지만 실제로는 조기 대선이 열릴 경우를 대비한 대권 포석으로 읽힌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직후인 2024년 12월 16일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잠행을 이어오던 한 전 대표는 1월 설 연휴 전후 정치 원로들을 만나며 향후 행보와 관련한 조언을 구해왔다. 이 기간 한 전 대표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보수 논객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유인태 전 민주당 의원을 잇달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다. 한 전 대표는 잠행 기간에도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과 교류해왔다는 것이 주변 인사들의 전언이다. 이들을 만나면서 자신감을 회복했다는 게 복수의 측근들 얘기다. 지금 거론되는 여권의 잠룡들로는 대선 승리가 힘들기 때문에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한 전 대표가 신선미를 갖추고 있어 변화를 바라는 중도층 요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는 평가를 많이 들었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한 전 대표를 만났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2월 11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 조기 대선이 실시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가장 확장성 있는 여당 후보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지난 전당대회 당시) 63%라고 하는 절대적인 다수가 한 전 대표를 선택했기 때문에 그 뿌리가 아직 없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대선이 조기에 열린다면 어느 후보보다 (국민의힘에서) 한 전 대표가 제일 확장성이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여러 정치 원로들과 국민의힘 내 옛 측근들을 만나온 한 전 대표는 자신감을 찾은 듯 2월 16일 “머지않아 찾아뵙겠다”며 정치 행보 재개를 공식화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지난 두 달 동안 많은 분의 말씀을 경청하고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치 복귀 첫걸음인 책 출간은 일단 좋은 출발을 보였다. 2월 19일 주요 온라인 서점에서 예약 판매를 시작했는데 선주문이 쏟아졌다. 주요 서점 실시간 판매량 1위를 휩쓴 것으로 그의 팬덤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출판사가 내놓은 책소개 글에 따르면 “비상계엄 반대, 계엄 해제 의결, 질서 있는 조기 퇴진 시도, 대통령 탄핵소추안 통과, 그리고 당 대표 사퇴까지의 14일 300시간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듯 생생하게 펼쳐진다”고 돼있다. 글 내용으로 볼 때 윤석열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반윤’ 이미지를 앞세워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향후 ‘대선주자 한동훈’의 간판으로 내세울 것으로 전망된다.
특이한 것은 저자 약력에 초·중·고 교명과 검사 경력이 빠졌다는 점이다. 한 전 대표는 서울 강남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서민들에게 거부감이 있다는 것을 감안한 걸로 보인다. 한 전 대표는 2001년 서울지검 검사로 임관한 이후 주요 대기업 사건, 불법 대선 자금 사건 등 수사에 참여했다. 2016년 ‘국정 농단’ 특검팀에 참여했고, 2017년 서울중앙지검 3차장, 2019년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을 맡았다.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면서 21년 검사 경력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이 화려한 검사 이력도 저자 소개에서 빠졌다.
대신 출판사는 “(한 전 대표는) 이성과 합리, 상식과 국민의 눈높이를 중시하는 자유민주주의자다. 주체적 결정권을 가진 동료 시민들의 주인의식과 가치 연대를 통한 공화주의가 사회 발전의 핵심 요소라고 믿는다”며 “보수주의자답게 원칙과 책임을 강조하며 법질서 확립과 격차 해소에 진심”이라고 소개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윤 대통령에 이어 ‘또 검사냐’라는 비판 여론을 세탁하기 위한 것인데 그렇다고 정치인 한 전 대표의 태생적 한계가 극복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반면, 친한계로 분류되는 한 국민의힘 당직자는 “정치인 한동훈을 새롭게 보여주겠다는 의미로 이해해 달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에서 나온 후 바로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집권당 대표까지 올랐던 사람이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초를 겪었다. 이제 ‘검사 한동훈’은 잊어 달라. 이젠 ‘정치인 한동훈’의 도전이 시작됐다. 극우로 치닫는 보수 진영을 재건하고, 이재명에 등 돌린 중도층을 끌어들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여당 내부에서 한 전 대표를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다시 돌아온다는 한 전 대표에 대한 응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비판 일색이거나 아니면 무시하는 반응이 대세를 이룬다. 대권주자 중 한 명으로 분류하는 정치권 평가가 무색하게 한 전 대표 존재감은 당내에서 전혀 부각되지 않고 있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을 옹호해온 윤상현 의원은 한 전 대표의 정계 복귀 소식이 나온 2월 16일 곧바로 페이스북 글을 통해 날을 세웠다. 그는 “지금은 한 전 대표님의 시간이 아니다”라면서 “탄핵 인용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국민께 줄 수 있고 대통령의 시간을 빼앗는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윤 의원은 같은 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서도 한 전 대표에 대해 “보수가 이렇게 몰락한 계기를 만든 장본인이 누구냐”고 물으며 “지금은 다시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가고 당이 통합되고 보수가 일어나는 때다. 한 전 대표가 나오면 오히려 당과 보수에 짐이 될 수 있다”고 쏘아붙였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2월 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한 전 대표가 (계엄 선포에 대해) 바로 ‘위헌이고 위법이다’라고 얘기한 것에 대해서는 조금 성급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언급, 한 전 대표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당의 노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나경원 의원도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은 한 전 대표의 시간이 아니다”라며 “더 자숙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2월 19일 SBS ‘편상욱의 뉴스브리핑’ 인터뷰에서 “한동훈이 당 대표가 돼 제대로 행동했으면 이 상황이 왔겠는가”라며 “정부 도와줄 생각은 안 하고 대통령한테 으름장 놓고 옆길로 새고 그러다가 이 꼴이 돼버린 것 아닌가”라고 직격했다. 2월 1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한 전 대표가 정치 복귀에 시동을 거는 것에 대해 기자들이 묻자 “언급할 가치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대구에서 3선을 하면서 여권의 핵심 지지층으로 불리는 대구·경북(TK) 정서를 잘 아는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는 2월 19일 YTN라디오 뉴스파이팅 인터뷰에서 “자기하고 몇 십 년을 동고동락했던 사람(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이 되느냐 안 되느냐 이 판에 ‘안녕하세요. 한동훈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보수 자유 우파 국민들에게 완전히 염장 지르는 것 아니냐”며 “돌아다닌다면 몽둥이세례를 당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권에서도 비슷한 진단이 나왔다. 한 전 대표를 지난 1월 만났다는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2월 1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가 한 전 대표에 대해 “말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유 전 총장은 “(한 전 대표는) 아직 나이도 있고, 어쨌든 좀 더 공부 좀 하고 내공을 쌓아가지고 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한참 더 배워야한다는 게 정치 원로 유 전 총장의 조언이었다.

이처럼 정가에서 수많은 쓴소리와 비관론이 쏟아지고 있지만 한 전 대표는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충만하다는 게 측근들의 한목소리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학창시절부터 검사 때까지 실패를 몰랐던 인생 역정이 그 바탕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정치도 열심히만 하면 되는 것이지, 도대체 안될 게 뭐 있겠느냐”라는 생각을 한 전 대표가 갖고 있다는 것이다.
친한계에서는 주관적 자신감만으로 출사표를 던지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우선 오세훈 홍준표 김문수 원희룡 등 기존의 여권 잠룡들에 비해 정치 신인이라는 점을 앞세운다. 또 대표 시절 윤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탄핵에 찬성했다는 점 등은 조기 대선 시 중도층의 마음을 얻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친한계로 불리는 김종혁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2월 20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되면 분위기가 확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친한계에선 지금 여당에서 나타나고 있는 윤 대통령과의 동조화는 일시적일 뿐, 막상 대선이 열리면 윤 대통령과의 ‘손절’이 표심에 유리할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한 전 대표 측이 장점으로 꺼내든 중도층 외연확장엔 의문부호가 붙는다. 과연 한 전 대표가 중도층을 뒤흔들어 대세를 좌지우지할 만한 파괴력을 지녔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더군다나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한 전 대표와 이미지가 겹치는 편인데, 과연 한 전 대표가 오 시장을 넘어설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 전망이 우세하다.
무엇보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윤 대통령 직무정지 전보다 오히려 더 높게 나오고 이 지지율을 국민의힘이 함께 흡수하고 있다는 점도 한 전 대표의 걸림돌이다. ‘반윤’을 표방할 것으로 보이는 한 전 대표가 과연 당에 설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가 최대 과제다. 반윤이 부각될수록 핵심 지지층인 영남과 더욱 멀어질 가능성이 높아 한 전 대표의 딜레마는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한 전 대표가 이런 구조적 한계에 갇힌다면 승부수를 던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갈수록 엇박자가 심해져가는 더불어민주당 상황을 감안하면 민주당의 반명(반 이재명) 세력이 이탈할 수도 있다. 여기에 여당 내 찬탄(탄핵 찬성)파가 뭉쳐지는 중도 제3지대가 만들어질 경우, 한 전 대표 합류 가능성이 있다는 시나리오다.
박근혜 정부 탄핵 직후 조기 대선 선대위에 참여해봤다는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만약 조기 대선이 있다면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제3지대가 만들어질 물리적 시간이 아예 없고 설사 만들어져도 2017년 바른정당처럼 존재감이 사라진다”며 “지금 구도로는 한 전 대표의 정치 재개가 이뤄져도 전망은 매우 비관적”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